“표현에 나이의 한계는 없다.”
허영만 화백의 작업대에는 지난 2016년 서울 무대에 선 70대 무용수 카를린 칼송의 큼지막한 인터뷰 기사가 붙어 있다. 희수(喜壽)를 넘어선 나이에도 깊이와 지혜가 깃든 우아한 독무를 추는 칼송은 관객에게 예술을 전달하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올해로 데뷔 47년째를 맞은 허 화백에게도 나이는 창작의 방해요소가 아니다.
1947년생인 허 화백은 허영만이라는 이름으로 1974년 정식 데뷔 이래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인기작을 꾸준히 탄생시켰다. 이현세·박봉성·신일숙·황미나·김혜린 등 1세대 펜 만화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지만 허 화백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인기 만화가로 활약하고 있다. 롱런 비결로 그는 ‘끊임없는 진화’를 꼽았다. 그는 “나이 들었다고 ‘구린내’가 나면 안 된다. 그러면 끝”이라고 말했다.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당대의 관심을 잡아야 하는 대중문화 분야에서 50년 가까이 인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이었다. 스토리 작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신문 연재만화를 시도했으며, 취재를 기반으로 한 만화도 히트시켰다. 실시간 주식매매 만화 역시 새로운 방식이다. 게다가 종이에서 인터넷이라는 플랫폼 변혁의 파고도 유연하게 넘었다. 허 작가는 이제 종이와 펜을 버리고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호빵맨’을 그린 야나세 다카시는 오랜 무명생활 끝에 70세가 넘어서야 ‘터졌어요’. 그는 90세가 넘어 부인과 사별하고 나서도 매일 푸시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 꼭 끌어안아 주기 위해서’라고. 나는 그 말에 정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게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죠. 물론 마누라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책이라고 타박을 하더군요 (웃음).”
허 화백 역시 에너지가 넘친다. 매일 아침7시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5~6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이곳에 머물며 작품에 매진한다. 그는 체력 유지의 비결을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음식을 먹고 ‘빈 소리를 하며’ 즐겁게 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은 더 밑에 자리한 그의 마음가짐이 에너지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다. 도전을 멈추는 순간 늙은이가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