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구글, 웹페이지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어줘.” “알렉사, 주유비 내줘.”
미래기술의 각축장인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이다. 혁신이나 미래 비전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이 빛을 발했지만 GAFA는 라스베이거스를 걷는 CES 관람객과 참가기업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연결했다. CES 2020 행사장 어느 곳을 가든 ‘헤이 구글’‘알렉사’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애플은 전시장을 따로 차리지 않았음에도 28년 만에 CES 무대에 등장해 최근 전 세계적 관심사인 ‘개인정보 보호’ 논의를 페이스북과 함께 이끌었다.
구글은 7일(현지시간) 웹페이지 읽기와 예약 명령 등 인공지능(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의 새로운 기능들을 발표했다. 웹페이지 읽기 기능은 스마트폰에서 웹사이트를 띄운 뒤 “헤이 구글, 이 페이지 읽어줘”라고 말하면 된다. 영어를 다른 42개 언어로 번역한 뒤 읽는 것도 가능하다. 예약 명령은 특정 시간에 맞춰 명령을 실행하는 기능이다. 가령 잠들기 전 “헤이 구글, 내일 새벽6시에 커피머신 켜줘”라고 말하면 다음날 아침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커피가 만들어져 있는 식이다. 구글은 스마트스피커·스마트폰은 물론 게임기·전기밥솥·수도꼭지까지 일상생활 속 모든 기기를 AI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LG전자와 필립스·레노버·하이센스·TCL 등 다양한 업체와 협업을 통해 10억개 이상의 기기에 AI를 탑재했다. 특히 BMW·볼보와도 파트너십을 맺고 자동차에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자동차를 운전할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운전하면서 “헤이 구글, 책 읽어줘”라고 했더니 노트북에 저장된 책을 낭독해주는 한편 중간에 “헤이 구글, 가장 가까운 식료품점에 데려다줘”라고 요청하니 곧바로 지름길을 보여줬다.
AI 스피커 시장 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아마존은 연결을 내세웠다. 알렉사를 탑재한 람보르기니 슈퍼카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아마존은 또 미국 정유회사 엑손모빌의 주유소에서 “알렉사, 주유비 결제해줘”라는 음성명령으로 간편결제를 할 수 있는 협업을 발표했다. 구글과 아마존이 잇따라 자동차 업체와의 협업을 발표하면서 ‘스마트카’ 시장에서까지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애플 역시 자체 AI 비서 ‘시리’로 가정 내 기기를 제어하는 스마트홈 시스템의 적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CES 2020에서 별도의 부스를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의 세로형 TV ‘더 세로’ 전시장에 ‘애플 에어플레이’가 함께 적혀 있는 등 조용히 존재감을 알렸다.
애플은 글로벌 이슈인 개인정보 보호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개인정보보호 담당 이사와 에린 이건 페이스북 최고프라이버시책임자(CPO)는 이날 ‘소비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프라이버시를 집중 조명했다. 그동안 CES에 참석조차 하지 않던 애플이 28년 만에 핵심 이슈를 선점한 셈이다.
호바스 이사는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용자들을 운전석에 앉힌다”며 “이용자들은 데이터를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과 AI 비서 시리, 지도 관련 데이터를 애플 서버로 받지 않아 정보를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은 라스베이거스 윈호텔에서 ‘프라이버시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억6,000만명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페이스북도 적극적으로 정보 보호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건 CPO는 너무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는 지적에 “‘데이터 최소화’를 지키고 있다”며 “이용자들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만 수집한다”고 반박했다.
이 밖에 구글은 CES 전시장에서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전 명령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발표하기도 했다.
/라스베이거스=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