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회복을 통해 경기 반등을 노리는 한국 경제에 중동발(發) 악재가 터지면서 정부는 8일에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관계부처는 이날 긴급회의를 잇따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이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가 상승과 글로벌 교역 위축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어 불안감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1·4분기 수출 반등을 기대했는데 이마저도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잇따라 긴급대책회의=정부는 이날 오후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 차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대응반 회의를 열고 중동 사태에 따른 국내외 상황과 향후 대응책을 집중 점검했다. 정부는 확대 거시경제금융회의 내에 △금융시장반(금융위원회) △국제유가반(산업통상자원부) △실물경제반(산업부) △해외건설반(국토교통부) △해운물류반(해양수산부)을 설치하기로 했다. 김용범 차관이 총괄 반장을 맡고 각 주무부처 차관이 반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한국은행도 이날 오후2시 윤면식 부총재 주재로 예정에 없던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긴급 개최했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향해 보복 공격을 가하면서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지수가 요동쳤다. 윤 부총재는 “미·이란 간 긴장이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관련 이슈가 수시로 부각되면서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은행은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정승일 차관 주재로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동향 점검회의’를 열었다. 산업부는 ‘중동 위기 대책반’을 개설해 비축유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수급 상황이 나빠질 경우 비축유를 즉시 방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해수부도 이날 긴급 배포한 자료를 통해 “중동 정세 악화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에 대비해 국적선사들이 우회통로를 확보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며 “호르무즈해협과 페르시아만을 오가는 선박에 대한 안전 확인도 1일 1회에서 2회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좌불안석=국내 기업들도 이란 사태를 예의 주시하며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정유사들은 군사 보복에 돌입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운항을 통제하면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들은 세계 원유 수요량의 약 30%를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내보낸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70%에 달한다.
전체 영업비용의 25~30%를 기름에 사용하는 항공업계도 고유가 가능성에 한껏 움츠러드는 모습이다. 연간 유류 소비량이 3,000만배럴이 넘는 대한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연간 3,300만달러의 영업비용이 추가로 든다. 해운업체들 역시 물동량 위축과 비용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란 사태가 장기화하면 중동 항로 물동량이 곤두박질칠 것”이라며 “물동량이 5~6%만 감소해도 전 세계 해운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세계 석유 혈관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악몽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미국과 이란의 무역충돌로 해운사들이 지급하는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보험사들은 전쟁 위험 지역을 항해하는 선사에는 별도의 보험료를 받는다. 일부 보험사들은 이미 해운사들에 보험료를 20~30배 인상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현지에 진출한 한국 건설사들도 초긴장 상태다. 무력충돌의 진원지인 이란에는 국내 건설사가 진출해 있지 않으나 이라크에는 현대건설·대우건설·한화건설 등이 14개 현장을 운영 중이다. 이라크 비스마야의 신도시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인 한화건설은 공사는 정상적으로 진행하되 국내에 입국한 직원들의 이라크 재입국은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이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뜩이나 좋지 않은 해외 건설 수주 규모가 더욱 나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210억달러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2006년(164억달러) 이후 13년 만의 최저치다. /세종=나윤석기자 한동희·진동영·백주연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