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은 이날 준법 감시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실효성을 담보할 구체적 실행 방안들을 제시했다. 최고경영진 뿐 아니라 그룹 총수에 대해 실질적인 감시 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 수락 과정에서 “삼성의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위원장직을 여러차례 고사했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 설립 배경에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요구가 있었던 만큼 유리한 양형 사유로 활용되고 재판 이후 흐지부지 될 것이라는 사회의 의구심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이 정말 진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만나 위원회의 완전한 독립과 자율성 보장을 다짐받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독립성·자율성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룹 전반에 대한 감시를 위해 각 계열사의 협약과 이사회 의결을 거치되 위원회는 회사 외부의 독립적 기구로 설치된다. 필요 시 직접 조사도 나선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준법·윤리경영에 대한 파수꾼, 통제자, 감시자가 되겠다”며 “법 위반 사안을 인지하면 이에 관한 조사를 시행하고, 법 위반 사항은 시정과 제재, 재발 방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안에 따라서는 형사 고발 조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삼성 최고경영진에 대한 감시 체제를 가능케 하는 장치들도 마련했다. 위원회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직접 신고를 받아 처리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위원회 운영에 사회가 함께 해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대외 후원금이나 공정거래 분야, 부정청탁 등의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노조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에 있어 법 위반 여부도 준법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가 삼성에 개선을 요구한 분야들이 포함됐다.
이 밖에 위원회는 예방적 차원에서 계열사 이사회 주요 의결 사안에 법적 리스크가 없는지 사전·사후 모니터링을 진행한다. 위원회가 이사회의 주요 의결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자료 제출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법 위반 사항 발견 시 위원회는 이사회에 직접 권고할 수 있으며 수용하지 않을 시 위원회 홈페이지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부인사 6명, 내부인사 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인선은 김 위원장이 직접 정했다. 법조계와 시민사회·학계 등 인사로 구성된 외부 위원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전 대검 차장,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6명이다. 위원들은 모두 비상임직이다. 위원회는 상설 기구로 운영되고 운영 종료 기간은 따로 두지 않았다.
다만 삼성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자율성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점 및 한계점도 거론됐다. “기존의 준법경영 감시 체제가 있었는데 작동을 하지 못했다. 국정농단 뇌물 요구와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건가”라는 지적에 김 위원장은 “위원회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제도에 허점이 있어서 발생했는지 한 번 더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측이 준법 경영 감시 대상으로 선정한 7개 주요 계열사의 선정 기준에 대해 묻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기준은 잘 모르며 향후 감시 대상 계열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위원회 인선에 회계 전문가가 없는 점, 직접 조사를 하더라도 삼성 계열사의 자료 의존 문제, 사무국의 삼성 인력파견 등으로 독립성·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외부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사무국은 충분히 독립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게 하겠다”며 “구체적인 운영 방침 등은 위원회 출범과 함께 밝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