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무력 대신 살인적 경제제재”…트럼프, 이란 보복 수위조절

[대국민 성명 "새 핵합의 추진 시사"]

이란, 공격 사전 통보...사상자 없어 트럼프에 길 터줘

美 "나토 개입해야" 압박 속 하메네이는 추가 보복 시사

사이버 테러 등 가능성...중동 혼란 당분간 지속될 듯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오른쪽) 부통령 등 참모진이 도열한 가운데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탄도미사일 공격 관련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오른쪽) 부통령 등 참모진이 도열한 가운데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탄도미사일 공격 관련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공격과 관련해 “군사력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과 새 핵합의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이란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표한 대국민성명을 통해 “이란이 미군기지를 공격했지만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내 임기 동안 이란은 핵무기를 절대로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며 “이란이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상자가 없음을 근거로 확전보다 수위조절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대신 미국은 이란에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즉각 부과하기로 했다. 이란의 제재회피를 돕는 회사와 은행·선박에 대한 금융·무역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요국들이 이란과 새로운 핵합의를 맺어야 하며 이란 국민이 평화를 받아들이면 번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물러서고 있다고 했지만 자신도 빠져나갈 방법을 원했다”며 올해 대선이 이번 결정에 변수가 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미사일 공격과 이후 전개과정을 보면 전면전을 부담스러워 한 이란과 미국이 대응수위를 치밀하게 조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양측 모두 적정 수준의 행동을 통해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는 얘기다.


당장 미국은 사상자를 내지 않으면서 미사일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와 함께 추가 군사행동을 피할 명분을 확보했다. 미 국방부는 미사일 공격으로 텐트와 주차장·헬리콥터 등이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중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즉각 보복이 불가피하지만 이는 중동 개입을 원치 않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최악의 수다. 중동 철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며 그는 “(미군이) 중동에 들어간 것은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라고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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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이란의 미사일 공격 후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미군 공군기지 내 여러 시설물에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다. 미국 플래닛랩스가 촬영한 위성사진 속 하얀 원 안의 건물들이 허물어진 채 검게 그을려 있다./AFP연합뉴스8일(현지시간) 이란의 미사일 공격 후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미군 공군기지 내 여러 시설물에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다. 미국 플래닛랩스가 촬영한 위성사진 속 하얀 원 안의 건물들이 허물어진 채 검게 그을려 있다./AFP연합뉴스


이란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미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복 미사일 공격으로 일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이란 내에서의 전면전은 피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직접 보복을 가해 체면을 차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번 보복 작전이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아미르알리 하지자데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은 9일 성명에서 “미군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자랑하지만 우리의 공격에 총알 한 방도 쏘지 못했다”며 “최고지도자께서 말씀하셨듯 적절한 보복은 미군을 중동에서 내쫓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작전의 목적은 미국인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게 아니라 미군의 군사 장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사상자가 없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은 미국을 건드릴 수 없다’는 언급과 함께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한다”며 “동시에 이란도 미국을 공격해 명예를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석했다.

다만 중동지역의 혼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중동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향후 미국의 공백을 유럽이 메우라는 압박의 뜻이 담겨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앞으로 나토에 이란 문제를 맡기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나토 회원국들은 지난 2015년의 핵협약을 폐기하고 이란과 전쟁을 선택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마지드 타크트-라반치 유엔 주재 이란 대사는 이란 국영 IRNA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이란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란은 이란을 전례없이 제재하면서 ‘협력’을 제안한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타크트-라반치 대표의 인터뷰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뒤 이란 측에서 나온 첫 공식 반응이다.

한 번씩 주고받은 미국과 이란 간 무력충돌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8일 밤에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그린존에 로켓 2발이 떨어졌다. 그린존은 미국대사관 같은 각국 공관이 밀집한 곳이다. 그린존 로켓 폭격의 배경과 배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은 남아 있다. NYT는 “이란에는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대리 단체가 많다”며 “전문가들은 이란의 사이버공격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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