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다음달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해상수송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공급량 부족으로 수요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14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지난 9일 채희봉 사장 주재로 LNG 수급상황 점검회의를 가졌다. 미국이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총사령관을 살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 만이다. 비축해둔 물량을 소진하고 나면 LNG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가스공사는 회의에서 △현 수준에서 미국과 이란 간 갈등 장기화(1단계) △갈등 고조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2단계) △전면전(3단계)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수급상황을 각각 점검했다. 2단계 상황 돌입 시 비축분이 오는 2월 중순께부터 수요량 대비 공급량이 부족해지고 3월 말이면 공급 부족량이 수십만톤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수입분의 30%에 달하는 카타르산 물량을 들여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양측 간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3월이면 LNG가 100만톤 이상 부족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가스공사는 현 상태를 1단계로 진단하고 당장 확보 가능한 물량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기존 장기계약 시 명시해둔 증량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일반적으로 LNG를 장기계약 형태로 들여오는 경우 대체재 격인 현물(스폿)의 가격 변동 등을 고려해 일정 규모로 수입물량을 조절할 수 있게끔 증량권과 감량권을 매매계약서에 명시해둔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중동 정세가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LNG 수송 선박이 정상적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고 있다”며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이상 기존 장기계약에 명시해둔 증량권을 행사하는 수준에서 수급을 안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조짐이 보일 경우 즉각 스폿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가스공사는 현재 싱가포르 스폿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물량과 가격 등을 점검하고 있다. 다만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이 대두되는 즉시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도 스폿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물량 확보가 만만찮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업계는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 추이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가스공사 측은 이란이 당장 호르무즈 봉쇄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한층 거센 경제제재를 예고한 가운데 이에 반발한 이란이 봉쇄를 단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으로 이란의 유가 위협이 다소 무력화된 만큼 봉쇄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이란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 어떤 일을 벌일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