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재판부가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회를 본 것은 맞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자 캠프의 여론형성 활동 문제를 더 깊이 살펴야 한다며 최종 결론은 오는 3월 이후로 미뤄 향후 재판과정에서 여론조작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밝혀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재판장과 배석판사 등이 2월 인사 대상인 점을 들어 “4·15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는 21일 김 지사의 공판 기일에서 “김 지사가 지난 2016년 11월9일 킹크랩 시연을 본 점이 상당 부분 증명됐다고 잠정 판단했다”면서도 “다양한 사정이 성립 가능한 상황이라 최종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지사 사건에서 추가 심리해야 할 부분으로 △‘드루킹’ 김씨 등의 진술 신빙성 △김 지사와 김씨 사이의 정확한 관계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김 지사의 역할 △문재인 대선 캠프의 여론 형성 조직 활동 △김 지사가 김씨 등에게 보낸 기사목록과 김씨 답신에 대한 김 지사 반응 이유 △댓글로 인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업체들의 이용자 수 변화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업체들이 비정상적 이용을 차단하기 위해 투입한 노력 △문재인·안철수 후보자 기사 댓글순위 조작 공범 혐의 성립 여부 등 8가지를 꼽았다. 특히 드루킹 일당과 문재인 대선 캠프 간의 조직적 여론형성 활동 연계 가능성을 살피는 부분도 포함돼 이목이 집중됐다.
이날 김 지사 측은 재판부가 최대 쟁점이었던 김 지사의 킹크랩 시연 참관 사실을 받아들이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지사 측 변호인은 “다소 의외의 변론 재개 사유 설명에 당혹스럽다”며 킹크랩 시연과 관련한 추가 소명자료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지사의 2심 선고 공판은 당초 지난해 12월24일로 예정됐다가 이달 21일로 돌연 한 달이나 미뤄졌다. 이후 이날 예정됐던 선고도 취소한 뒤 다음 기일을 3월10일 오후2시로 잡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재판부가 선고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판장인 차문호 부장판사와 좌배석판사인 최항석 부장판사 모두 해당 재판부에서 만 2년을 보낸 다음달 법원 정기인사 대상자인데 재판부 변경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에서 속행 여부가 불투명한 3월로 다음 재판 기일을 잡았기 때문이다. 3월부로 새 재판부가 올 경우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 심리해야 해 김 지사 선고는 4·15총선을 넘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한편에서는 재판장인 차 부장판사와 진보 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주심 김민기 부장판사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김 부장판사는 2018년 ‘사법개혁 후속추진단’ 멤버로도 활동하며 급진적 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김 지사는 2016년 11월께부터 6·13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2월까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당선 등을 위해 댓글 조작 공모 등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해 댓글 조작을 빌미로 드루킹 측근에게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혐의도 있다.
1심은 댓글 조작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김 지사를 법정구속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장이었던 성창호 부장판사는 현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피고인으로 재판에 넘겨져 20일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김 지사는 항소심 과정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을 신청해 지난해 4월17일 구속 77일 만에 풀려나 도정 활동을 하고 있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11월14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김 지사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에 관해서는 징역 3년6개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6개월 등 총 징역 6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는 징역 5년이었던 1심 구형량보다 많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