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기가 사물인터넷 허브가 될 수 있다(Everything could be IoT Hub).’
삼성전자(005930)의 가정 내 사물인터넷(IoT) 시장 장악 전략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삼성전자가 IoT 플랫폼 ‘스마트싱스’와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빅스비’ 확대 적용을 통한 ‘멀티 IoT 허브’ 구축 전략에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뿐 아니라 TV·냉장고 등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만큼 아마존·구글 등 AI 스피커를 IoT 허브로 내세운 업체와는 다른 전략으로 경쟁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획이다.
2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음성 명령시 이용자와 가장 가까운 전자제품이 먼저 반응토록 하는 ‘멀티 디바이스 웨이크업’ 기능을 향후 빅스비가 탑재된 가전제품 대부분에 적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멀티 디바이스 웨이크업 기능을 탑재한 에어컨이나 TV 등을 내놓으며 멀티 IoT 허브 전략을 본격화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이용자가 “헤이 빅스비, BTS 최신곡 틀어줘”라고 이야기하면 냉장고·에어컨·TV 중 이용자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기가 명령어를 인지해 음악을 틀어주게 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내놓는 벽걸이형 에어컨에 빅스비를 신규 탑재했으며 지난해 3월 글로벌 스피커 업체인 ‘소노즈’를 스마트싱스 생태계에 끌어들이는 등 향후 글로벌 가전·정보기술(IT) 업체와의 제휴로 IoT 생태계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전략은 빠르게 바뀌는 IoT 시장 상황과 관련이 깊다. 아마존이 2014년 음성인식 AI 스피커 ‘에코’를 출시한 후 구글·바이두·알리바바 등이 잇따라 AI 스피커를 내놓으며 ‘가정 내 IoT 허브=AI스피커’라는 공식이 자리 잡는 듯했지만 미국을 제외한 여타 시장에서는 AI 스피커 이용률이 높지 않다. 특히 AI스피커를 음악감상이나 쇼핑 등에만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 내 IoT 허브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TV나 냉장고 기능이 갈수록 고도화하면서 IoT 허브를 담당할 수 있는 기기도 늘어나고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CE 부문장 또한 최근 기자들과 만나 “모든 기기가 온라인에 100% 연결돼 있지는 않기 때문에 3년여 뒤에는 IoT 허브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밝히기도 했다. TV나 에어컨 등에 신경처리망장치(NPU) 반도체를 탑재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가전기기가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는 ‘엣지컴퓨팅’ 시대의 도래로 멀티 IoT 허브 시대가 수년 내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롱텀에볼루션(LTE) 대비 20배 이상 빠르고 10배 이상의 IoT 기기 연결이 가능한 5세대(5G) 상용화로 가정용 로봇 등 지금과는 다른 IoT 제품이 나타날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AI 스피커 출시 시기가 계속 지연되는 것 또한 이와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7년께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 등을 탑재한 AI 스피커 출시 등을 계획했지만 AI 플랫폼 종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빅스비를 탑재한 AI 스피커 출시로 방향을 선회했다. 다만 AI스피커의 시장 파급력이 갈수록 약해지면서 삼성전자 또한 빠른 출시보다는 선두 업체와 차별화된 AI 스피커 제작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 상반기 시판될 AI 스피커 ‘갤럭시 홈 미니’는 적외선 리모컨으로 구동이 가능한 제품을 음성으로 모두 제어할 수 있게 해 구글이나 아마존 제품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졌다. 하반기에는 갤럭시홈을 선보여 멀티 IoT 허브 구축 전략에 한층 속도를 낼 계획이다.
문제는 AI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다. 구글에서 삼성전자의 ‘빅스비’를 검색하면 최상위 연관 검색어로 ‘빅스비 끄기’와 ‘빅스비 삭제’가 노출된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이 개인화를 통한 최적의 정보 외에 가장많이 검색된 키워드를 상위에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빅스비에 대한 이용자 불만이 상당하다는 추론이 나온다. 빅스비가 지원하는 언어는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미국·영국식 별도),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등 8개에 달하지만 영어와 같은 주요 언어에서도 인식률이 낮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가전기기의 ‘지나친 고사양’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미 스마트폰 하나로 각종 동영상이나 음악재생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냉장고 등 여타기기에까지 디스플레이 및 스피커 등을 탑재하는 것은 ‘IT성능의 과도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탑재되는 부품이 늘어나는 만큼 제품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전기기 기능이 추가 개량이 힘들 만큼 업그레이드된 상황에서 이 같은 IoT 전략을 통한 추가적인 가전 수요 창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냉장고, 에어컨, TV 등가전기기 대부분은 교체 주기가 10년 가량으로 2~3년에 불과한 스마트폰 대비 수익 개선이 힘든 분야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생활가전과 스마트폰 등에서 1위 사업자인 만큼 삼성 내부에서는 ‘굳이 IoT 허브가 필요하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략적 유연성이 큰 편”이라며 “다만 빅스비의 음성인식 기능 제고 없이는 IoT 시장에서 삼성이 가진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