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도는 신구간(新舊間)이다. 제주도에는 집안의 신들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음력 정월 초순경 전후로 이사를 하는 풍습이 남아 있어 이때 이사를 많이 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금쯤 예비 입학생, 신입사원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사를 한다.
그런데 이사갈 곳은 미지의 영역이다. 윗집에서 쿵쾅거리진 않을지, 아랫집에서 담배 연기가 올라오진 않을지, 옆집에는 무서운 사람이 살고 있진 않을지 이사하기 전부터 걱정이다. 이럴 때 주택계약에도 진술보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술 및 보장은 주식매매계약 등에서 일방당사자가 대상회사 등에 대한 일정한 사항이나 정보를 진술하고 그 진실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영미법계의 인수·합병(M&A) 계약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던 것으로 최근 국내 기업 간 M&A 계약에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사후에 현실화된 손해를 감안해 매매대금을 조정할 수도 있다. 인수 이후 대상 회사에 예상치 못한 우발채무가 드러난 경우가 진술보장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문제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진술보장 위반이 문제됐을 때 법원으로 가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로 분쟁이 종결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매도인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대상 회사를 지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수인이 제공하는 진술보장 위반에 관한 사실관계가 정확한지 확인할 수 없는 측면이 있어서다.
분쟁의 해결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술보장 조항과 손해배상 조항의 해석이다. 진술보장 위반에 관한 우리나라 판례는 기본적으로 계약 문언에 충실하게 판단(대법원 2015.10.15. 선고 2012다64253 판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술보장위반의 계약상 성립요건 중 ‘매도인 측의 인식가능성’이 문제된 사안에서 교섭과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계약 문언보다 매도인 측의 범위를 넓게 인정한 사례(대법원 2018.7.20. 선고 2015다207044 판결)도 존재한다.
하지만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청구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진술보장에 따라 의무가 부과된 계약이행이 강행법규 위반인 경우 진술보장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2019.6.13. 선고 2016다203551)했다. 강행법규를 위반한 진술보장은 그 효력이 없다는 취지다. 진술보장으로 경제적 위험을 분배하고 매매대금을 사후조정하려는 계약당사자들의 의사를 제한한 셈이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각 계약에 내포된 위험을 다각도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사후에는 진술보장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계약 일반 원칙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