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하면 할아버지는 손자들을 앉혀놓고 토정비결을 봐주셨다. 세뱃돈 대신 새로운 한해를 무탈하게 보내라는 할아버지의 기원이자 덕담이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미래를 전망하고 예측하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다. 미래를 준비하기위해 예측하는 행위는 인간의 고유한 권한이자 특권이다.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미래를 예측해 온 근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문명의 유적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이 도시의 기본시설 중 하나로 빠지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제사장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고 그 변화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법을 통달하였으니 지금까지 내려오는 천문학이다. 천문학이 점성술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양도 다르지 않다. 수천년의 시간 속에서 겪었던 경험치의 누적이 만들어낸 주역은 성리학의 주요 경전으로 학자라면 누구나 읽고 공부해야 할 목록 중 으뜸이다. 특히 동양에서는 하늘의 움직임이 곧 땅의 움직임이라고 믿고 차분히 그리고 면밀히 하늘의 변화를 살펴왔던 것이다.
점성술을 근거로 한 서양식 카드점(占)정도로 알려진 타로가 인문학으로 재해석한 책이 나왔다. 인문학자 민혜련 박사가 쓴 ‘타로 스퀘어(의미와 재미 펴냄)’가 그것. 저자는 타로점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지식 보다는 타로가 언제 생겨나 지금까지 왔으며, 어떤 역사적 사건 속에 숨겨져있었는지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 설명해 나간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문학과 기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이자 공학박사인 저자가 인문과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면서 타로의 매력을 소개한다.
타로점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카드에 그려진 그림과 상징이 어떻게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지 궁금해지게 된다. 하지만 점을 보고 나면 잊어버리기 쉽다. 동양과 서양, 중세에서 현대까지 그토록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끌어온 타로 카드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내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수백년간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고, 중세의 신비와 르네상스의 부흥을 건너 드디어 마주한 타로 카드의 맨 얼굴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십자군 전쟁, 템플기사단, 프리메이슨, 르네상스 등 중세 서양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등장한 타로는 칼 융의 원형, 페르소나 등 심리학으로 해석되고,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으로 연결된다. 오래된 이야기에 힘이 깃들 듯, 오래된 염원과 비밀의 상징이 합체된 카드는 인류가 잃어버린 지식의 한 귀퉁이 퍼즐이 되어 일상을 파고든다.
저자는 “현대의 물질세계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 외에는 모두 신비 혹은 미신으로 치부해버린다”면서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석학들이 우주의 텅 빈 공간을 에테르라는 제 5원소가 메우고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철학과 과학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신비’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타로도 그 신비의 영역이지만 역사적으로 분명히 존재했던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설이나 신화란 어찌 보면 인류가 잃어버린 역사의 퍼즐 조각일지도 모른다. 그중 하나가 타로라는 확신을 버릴 수가 없다”면서 “타로는 영감의 원천이다. 마치 현대의 세계에서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내가 고대의 지식이 축척된 CD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에 비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