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3곳은 작동 가능한 열화상카메라조차 없고 1대만 보유한 곳도 8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구가 보유한 열화상카메라의 총 대수는 67대에 불과하다.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신종플루·메르스 등 전염병 대란을 겪고도 대응에 무심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연초에 예정된 자치구 행사가 많아 빠른 시일 안에 장비를 들여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30일 서울시가 서울시의회에 보고한 자료를 토대로 서울경제가 취재한 결과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열화상카메라를 보유하지 않은 곳은 종로·도봉·강남 등 3개 구로 집계됐다. 성동구는 어제까지 확보된 열화상카메라가 없었지만 이날 두 대를 받아 구청사 입구에 설치했다. 열화상카메라가 1대만 있는 자치구도 중·동대문·성북·강북·서대문·마포·양천·강서로 8곳이나 됐다.
열화상카메라는 앞에 지나가는 사람의 체온이 37도를 넘기면 이를 알려주는 장비로 발열을 동반한 호흡기 전염병 예방에 필수적이다. 지난 2003년 참여정부의 사스 방역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조기에 열화상카메라를 공항 등에 설치해 호흡기 환자를 격리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검역법에 근거해 공항과 항만에는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자치구는 기초자치단체라는 특성상 행사 등 주민과의 접점이 많아 전염병 방역의 최일선에 서야 하지만 기초적인 장비도 갖춰놓지 못한 셈이다. 특히 자치구는 보건소를 담당하기도 한다. 서울시는 보건소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진료를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 자치구 내에 보건소·보건분소 등 복수의 의료기관이 있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시의회에서도 “예산을 과감히 투입하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날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봉양순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노원3)은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에게 “시립병원과 보건소 모두 보유현황을 보니 열화상카메라가 많지 않다”며 “발발한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수요조사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혜련 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도 “필요한 부분은 대응할 수 있도록 예비비를 과감히 집행하라”고 말했다.
연초에 자치구에 예정된 행사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는 전날 구청장회의에서 “오는 2월까지 시민참여행사를 원칙적으로 취소·연기해달라”고 권고했지만 몇몇 구청장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8일로 예정된 정월대보름 행사의 경우 취소하면 주민의 반대가 심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신년하례회 등이 연간일정으로 계획돼 있다. 이 경우 행사장에 들어오는 시민들의 발열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 서울시도 “개최가 불가피한 시민참여행사는 행사 규모를 최대한 축소해 개최하라”며 “대규모 행사의 경우 열화상감지기를 설치·운영하라”고 권고했다.
자치구는 ‘예산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성동구 관계자는 “1대당 2,000만원 상당의 가격이 부담된다”고 말했으며 도봉·종로구 관계자도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강남구 관계자도 “그동안 왜 열화상카메라를 구비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며 “하루 이틀 내로 완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염병이 돌 때가 아니면 별다른 수요가 없다는 점도 구입을 미루는 이유이다.
다만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고서도 지방정부가 너무 안일했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용산·송파구 관계자는 “신종플루 때 필요성을 느껴 열화상카메라를 구입했다”고 밝혔고 영등포구는 1월 23대의 열화상카메라를 주문했다. 자치구들은 서울시가 28일 재난관리기금 167억원을 투입해 열화상카메라 구입비용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부랴부랴 장비 확보에 나섰다. 나 국장은 “수요조사 후 재난기금을 활용해 시·구 예산이 적절히 배분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