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29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협정을 비준하면서 영국의 브렉시트 단행을 위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지난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7개월 만에 브렉시트가 현실화됐지만 영국과 EU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한이 연말까지로 촉박해 영국이 경제 부문에서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이날 찬성 621표, 반대 49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영국의 EU 탈퇴협정을 통과시켰다. 브렉시트의 마지막 절차인 유럽의회 비준이 완료되면서 영국은 예정대로 31일 오후11시(그리니치표준시)를 기해 EU를 떠나 전통적인 고립주의 행보를 다시 시작한다. 브렉시트로 영국은 유럽의회·집행위원회·유럽이사회 등 EU의 3대 의사결정기구에서 탈퇴한다.
영국이 EU를 떠나는 첫 회원국으로 결정되는 표결의 순간 본회의장에서는 눈물과 환호가 교차했다. 스코틀랜드 민요인 이별곡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의원들은 손을 맞잡고 부둥켜안았다. 반면 브렉시트 지지 세력을 대표하는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을 흔들며 비준을 환영했다.
지난해 집권 보수당을 이끄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 수 차례 브렉시트 법안이 부결되는 고배를 마셨지만 같은 해 12월 조기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결국 이달 9일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온 지 3년7개월 만에 브렉시트가 현실화한 것이다. 영국의 EU 탈퇴는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기도 하다.
영국 정부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한 후 EU 측과 FTA를 비롯한 미래관계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일종의 과도기로 올 12월31일까지 설정된 전환기간에 영국은 계속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남아 있게 되며 예산 분담을 포함해 EU 회원국으로서의 의무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안보·이민·교통 등 정치·외교 부문에서의 무난한 협상 타결을 전망하지만 통상 문제가 걸린 FTA 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U의 주도권을 쥐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협상에서 영국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경고하는 등 EU 내에서도 강경대응을 예고한 만큼 연내 FTA 타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오는 6월 말까지 최대 2년간의 전환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존슨 총리는 연장이 불가능하도록 브렉시트 법안을 개정한 상태다. EU와 통상협상 등 FTA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도 무조건 유럽을 떠나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이 전환기간 내 FTA 체결 없이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탈퇴할 경우 전 세계에 노딜 브렉시트의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이 합의 없이 EU 관세동맹을 떠나면 양측은 교역 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따른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까지는 무관세였지만 2021년 1월부터는 10%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이 EU 국가들로부터 수입한 상품 규모가 2018년 기준 총 3,012억유로(약 400조원)로 집계됐다”면서 “영국이 합의 없이 관세동맹에서 탈퇴할 경우 이중 약 473억유로어치의 상품이 관세 부과 리스크에 노출된다”고 분석했다.
브렉시트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영국의 부담도 크지만 EU의 입지도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이 캐나다·호주 등 영연방의 수장인데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EU가 영국을 잃은 것은 규모·거리·존재감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이 텍사스를 잃은 것과 같다”면서 “EU가 크게 패배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