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7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31일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4분기 매출액이 6조9,2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3% 줄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2,360억원으로 94.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4,564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으며 1년 전 50%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은 3%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수요 회복세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여전히 전년 대비 낮은 수준인데다 수요 증가에 대비해 비중을 확대한 제품군의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또한 신규 공정 전환 초기 원가 부담도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박성환 SK하이닉스 IR담당 상무는 이날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D램은 윈도7 종료에 따라 전 분기 대비 출하량이 당초 계획 대비 8% 정도 상회했으나 평균판매단가(ASP)는 7% 하락했으며 낸드플래시는 수요 호조가 지속됐고 ASP는 전 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전년 대비 33.3% 감소한 26조9,907억원, 영업이익은 86.9% 줄어든 2조7,127억원을 기록했다. 적자였던 2012년 이후 7년 만에 최악의 실적이다. 영업이익률은 10%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D램 수요 둔화와 가격 급락이 지난해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는 실적 반등이 기대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상저하고’ 흐름을 보이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도 올해 반도체 경기 회복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데이터센터 투자가 재개되면서 서버 디램 회복 기조가 계속되고 지난해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5세대(5G) 이동통신 지원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 한 해 2억대로 교체수요를 자극할 것”이라며 “이 같은 수요 흐름을 종합하면 올해 D램 수요 증가율은 지난해보다 높은 20% 수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보다 더 낙관적인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전날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D램 10% 중반의 수요 증가를 전망했다. 낸드플래시도 삼성전자보다 더 공격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낸드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PC 내 SSD 채용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서버 고객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상반기에 계절성을 상회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 낸드 시장 수요는 약 30% 초반 수준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20% 중후반으로 내다봤다.
다만 올해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낙관적으로 봤지만 공급과 투자는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연간 D램 출하 성장률을 수요 증가율보다 낮은 10% 중후반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투자 축소도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시장환경이 개선되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어 보수적인 투자와 생산전략에는 큰 변화가 없다”며 “올해도 장비와 인프라 투자 모두 지난해보다 상당한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투자 규모는 12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올해 SK하이닉스의 투자는 지난해보다 20~30% 줄어든 9조~10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업황 둔화로 투자 여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지난해 1·4분기 순차입금 비율은 -2%였으나 지난해 4·4분기에는 14%로 크게 상승했다.
이 같은 SK하이닉스의 보수적인 전략은 메모리반도체 시황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방향성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공급을 수요만큼 늘리지 않고 투자를 줄인다는 시그널은 수요처의 경쟁적인 재고 확보를 부추겨 수요와 가격 반등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병기·변수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