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둑에는 딱히 흥미를 갖지 못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아버지와 가끔 한 판씩 둬 보기는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력(碁歷) 역시 나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우리는 바둑보다 장기를 훨씬 많이 뒀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는 바둑과 스쳐 지나가게 됐다. 대학생이 된 후 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하루 종일 바둑을 두던 선배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바둑이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경기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 정도는 갖게 됐다. 한 선배가 나를 그 세계로 인도해보려 한동안 노력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끌려 들어가지 않았다. 바둑판 위 세상보다 현실 세계에 훨씬 관심이 컸기 때문이었을 테다. 이세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바둑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이세돌이 프로기사로 데뷔한 지난 1995년 이후 그의 활약상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둑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이세돌은 12세에 입단한 후 빠르고 정확한 수읽기에 바탕을 둔 공격적인 기풍으로 뛰어난 선배들을 차례로 꺾어 나가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한국인, 나아가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킨 사건은 2016년 9월 열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이었다. 이 이벤트는 딥마인드 측의 제안을 이세돌 9단이 수락함으로써 성사됐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즈호텔에서 이레 동안 다섯 판의 바둑을 두는 일정이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세돌은 대국 전 기자회견에서 “3대2 같은 스코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한 판이라도 지느냐의 승부일 것”이라며 특유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AI 테크놀로지가 아무리 발전했어도 세계 최정상급의 바둑 기사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게다가 이세돌은 정석(定石)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묘수(妙手)로 일가를 이루지 않았는가. 모두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세돌이 세 판을 내리 패배하자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세 번째 대국이 끝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세돌은 알파고가 “굉장히 놀라운 프로그램이지만 완벽한, 신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마치 이튿날 열릴 네 번째 대국에서 유일한 신승(辛勝)을 거둘 것을 예측하는 듯한 말이었다.
알파고와의 대국 경험에 대해 이세돌 9단은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이 대국을 지켜보던 사람들을 위로해주지는 못했다. 우리는 이미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라는 이벤트를 21세기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하나의 거대한 은유(metaphor)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은유 체계 속에서 알파고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기계 대표’를, 이세돌은 ‘인간 대표’를 맡았다. 바둑이라는 게임은 인간이 기계에 양보할 수 없는 일종의 전쟁터가 됐다.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알려진 지형으로 기계가 공격해 들어왔다. 인간은 이곳에서 밀리면 더 이상 밀릴 곳이 없다는 듯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당대 바둑 최고수 중 한 명인 이세돌을 대표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는 참담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 은유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라는 은유로 받아들인다면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인간의 노동은 기계에 의해 점점 대체돼왔다. 초창기의 기계는 동력원이었다. 이는 가축이나 노예의 근력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후 기계 장치들이 점점 섬세해지면서 인간의 복잡한 노동을 하나씩 대체해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발명가 엘리 휘트니(1765~1825)는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목화씨를 분리하는 작업을 기계화하는 데 성공해 이름을 남겼다. 20세기 중반 이후 기계는 컴퓨터와 결합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작업들을 자동화했다. 오늘날 자동차공장에 가보면 그 효과를 금세 느낄 수 있다. 100년 전에 수많은 노동자가 달라붙어 했던 일을 지금은 거대한 로봇 팔이 훨씬 빠른 속도로 수행하고 있다. AI 알파고는 이러한 변화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미 20년 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빌 조이가 예견했듯이 “미래는 우리(인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이는 최근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은유는 새롭고 복잡한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기도 한다.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이세돌 9단이 보여준 품격 있는 행보는 AI를 둘러싼 최근의 변화를 이해하는 전혀 다른 은유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는 2019년 11월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프로기사로서 은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은퇴 발표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의 등장이 은퇴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거든요. 둘이서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 이런 식으로 배웠는데 지금 과연 그런 것들이 남아 있는지….” 이 말은 한 분야에서 최정상에 도달한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AI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 최고수도 열 판 두면 열 판 모두 질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인간이 바둑을 두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세돌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틀 뒤 은퇴대국으로 NHN이 개발한 국산 바둑 AI 프로그램 ‘한돌’과 세 차례 대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한돌에 두 점을 까는 접바둑을 두고 패배하면 2번기는 세 점을 까는 이른바 ‘치수고치기’ 방식으로 두겠다고 밝혔다. “예술로서의 바둑”이라는 의미가 사라진 지금, 이세돌의 은퇴대국은 AI 소프트웨어가 어디까지 진화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위한 설계였다. 이 대국에서 그는 1승 2패를 거두고 바둑계를 떠났다. 그의 이후 행보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이를 인간이 기계에 패배해 바둑이라는 전쟁터에서 퇴각한 사건으로 봐야 할까. AI의 등장은 이세돌이 평생 직업으로 삼아온 바둑이라는 영역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제 30대 후반인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알파고와의 만남은 이세돌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절점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세돌의 은퇴대국이 끝난 후 인간과 AI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1월14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프로기사 입단대회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한 선수가 입고 있던 코트 단추에 소형 카메라를 달아 대국 상황을 외부로 전송했고 무선 이어폰을 통해 훈수를 받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훈수를 둔 것이 사람이 아니라 AI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었다. 웬만한 바둑 사범보다는 AI의 도움을 받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AI 시대의 풍속도다. 곧 여러 영역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일부는 AI와 결합한 사이보그가 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우위에 서는 길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쟁취한 우위는 오래가지 못한다. 21세기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보는 것뿐이다./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