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이 지검장에게 기소 처리를 세네 차례 지시했는데 지연한 것도, 결국 지검장 수하 간부가 총장 지시를 받아 기소를 결재한 것도 여태 검찰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복수의 전·현직 검찰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윤석열 검찰총장-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사이에서 일어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 결재 과정을 두고 이러한 취지로 말했다. 그리고 이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지검장이 정권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실세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검찰 조직의 정점에는 윤 총장이 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족 비리 수사,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수사 등 연이은 정권 수사로 청와대·여권의 미움을 단단히 샀다. 따라서 이 지검장이 정권을 뒷배 삼아 윤 총장에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지검장이 검찰 내 2인자로 거론되는 위치에 있으나 1인자에 맞설 수 있는 ‘실세 2인자’라는 분석이다.
이 지검장이 실세라는 것은 지난달 8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 결과에서 명징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검찰 인사에서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맡았다. 이후 1년 단위로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앙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다. 이는 일명 ‘빅4’ 보직으로 불리는 대검 공공수사부장(옛 공안부장) 외에 나머지 보직을 연달아 맡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같은 커리어를 거친 인사는 역대 검찰에서 한 명 정도 더 있다고 한다.
정권이 이처럼 이 지검장을 중용하는 이유로는 문 대통령과의 인연이 꼽힌다. 이 지검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돼 특별감찰반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 또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이기도 하다. 따라서 ‘검사 중 믿고 맡길 수 있는 우리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 지검장이 청와대 파견 시절 문 대통령 가족과도 연을 맺으면서 김정숙 여사가 이 지검장을 아낀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이 지검장이 아직 검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차기 총장으로 낙점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검찰에는 고검장급이 9명이다. 즉 검찰총장 외에도 이 지검장보다 직급이 높은 검사가 9명이나 더 있는 것이다. 이중 이 지검장의 동기인 사법연수원 23기가 5명이며 후배인 사법연수원 24기 1명도 있다. 특히 9명 중 5명은 지난달 8일 인사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그럼에도 이 지검장의 화려한 커리어와 현 위치를 감안할 때 선두주자라는 것에 법조계에서는 이견이 없는 모양이다.
이번 정권은 이미 검사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앉힌 전례가 있다. 바로 윤 총장이다. 이는 두 가지에서 이례적이었다. 먼저 검사장이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검찰총장이 된 것. 검찰 역사상 검사장에서 곧바로 총장이 된 사례는 1981년 정치근 검찰총장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두번째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것. MB정부 시절 한상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것이 유일했다.
따라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재차 직행시키는 것도 이번 정권은 개의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역시 윤 총장이 그 근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5월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앉히면서 그 자리를 고검장급에서 지검장급으로 바꿨다. 이는 2005년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자리를 되돌린 것이다. 청와대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후 정치적 사건 수사에 있어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계속된 점을 감안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윤 당시 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직행시킨 것이다. 이에 ‘정치적 중립’이란 원칙을 스스로 세웠다가 무너뜨린 행태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러한 이 지검장의 존재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행보도 심상찮을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일선 간부들과의 마찰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9일 윤 총장이 주재한 대검·중앙지검 간부들의 ‘울산 지방선거 개입 피고발 사건 처리 회의’에서도 이 지검장은 황운하 소환조사, 백원우-박형철 대질신문, 추가 압수수색 필요성을 들어 기소를 미룰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간부들은 다가오는 총선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추가 압수수색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지검장이 합리적인 주장을 한다기보단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의심이 팽배한 상황이다.
일선 간부들 사이에선 이 지검장이 법무부 혹은 청와대와 계속해서 의견과 방침을 조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소되지 않은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이 지검장에게 최 비서관 기소에 대한 결재를 올린 지난달 22일 저녁, 이 지검장은 지검장실에서 누군가와 오랜 시간 통화했다고 한다. 또 오후 10시20분께에 청사를 나갔다가 자정께 다시 청사를 들어와 수사팀에 “최 비서관의 소환날짜를 조율해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 지검장이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청사를 나갔을 때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지검장과 윤 총장 사이에서 계속해서 파열음이 터져나오면 윤 총장이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기에 윤 총장이 이 지검장에 대해 쓸 수 있는 카드는 감찰이 유일하다. 그러나 감찰 결과 문제가 있다 해도 징계권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어 역시 실효성이 없다. 즉 이 지검장이 윤 총장에 맞서거나 항명하면서 검찰의 영이 서지 않는 일이 계속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여권이 공격하고 청와대에서 불신임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윤 총장이 거취를 결단해야 할 상황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지검장이 앞으로 반대 등 독자 행보를 하더라도 검찰 내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번에 검찰청법에 따른 총장 지휘권을 통해 최 비서관 기소가 이뤄진 것, 윤 총장 주재 간부회의를 통해 선거개입 의혹 기소가 이뤄진 것과 같이 결국 적법한 절차를 통해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 검찰 간부는 “검찰 내에는 수십년 간 다듬어온 의사결정 시스템이 있다”며 “일부 반대가 있더라도 이를 통해 컨센서스(집단적 합의)에 이르며 사건을 순리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