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인터뷰] 이희준의 가면이 빛난 이유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곽상천 역

‘남산의 부장들’ 속에선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의 예리한 칼날 연기를 만날 수 있다 . 총구를 겨눈 것처럼 팽팽하게 돌아가는 연기 전쟁 속에서, 칼로 찔러도 절대 틈 하나 생길 것 같지 않은 묵직한 ‘통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희준이 해석한 곽실장의 존재감이다. 그간의 작품에서 보여 주었던 심도 있는 내면 연기와는 또 다른 ‘강렬함’이다.

이희준은 “전작들이 심리적 가면에 집중 했다면 이번 작품은 신체적 가면을 쓴 느낌이다”는 말로 표현했다. 영화 완성본을 본 뒤 그가 내 뱉은 말은 “찐 게 낫구나. 체증증량이 적절했구나. ”였다.







개봉 11일째 400만 관객을 돌파한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영화다. 한·일 양국에서 약 52만부가 판매된 김충식 저자의 논픽션 베스트셀러 ‘남산의 부장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남산의 부장들’ 속 곽상천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중심을 잡는다. 대통령 경호실장이자 각하를 국가로 여기는 신념에 찬 곽상천 역할의 이희준은 위세 당당하게 서있다. 이희준은 경호실장 캐릭터를 위해 25kg이나 증량해 비주얼 변신에 도전했다. 살을 찌우자, 배우의 목소리는 물론 걸음걸이 및 제스처 등 동작이 달라졌다.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이 캐릭터는 몸집이 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각하를 100% 믿고 따르는 인물인데다 거의 다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는 대사밖에 없거든요. 대본부터 이 인물의 우직한 덩어리감이 있어요. 살이 쪄서 그런지 한 호흡에 할 수 있는 글자가 많지 않았죠. 실제로 세 네글자만 연달아 말해도 숨이 차더라. 그래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정도의 비주얼은 필요했다고 봐요.”

박정희 정권의 2인자 차지철 경호실장을 모티브로 한 곽상천 캐릭터로 돌아온 배우 이희준은 “처음엔 곽상천이란 인물이 이해가 안 됐다”고 털어놨다. 박통의 존재를 종교적 신념으로 여기는 충성심 뿐 아니라, 무대포처럼 밀어붙이는 직선적 성격은 주변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인물이었다. 실제로 주변에 곽상천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고 말 할 정도.

곽상천은 외면과 내면이 같은 인물이다.보이는 모습이 전부인 단순하고 투명한 캐릭터이다. 연기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지점은 극 중 곽상철이 뭘 믿고 있는지, 왜 믿는지에 대한 대목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그가 내린 결론은 ‘그냥 사람이구나’, ‘결국 그도 사람이려니 했다’ 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다른 캐릭터들이 예리한 칼날이라면 곽상천은 투명한 통나무 같아요. 의뭉스러움을 가지는 게 인간이고, 상대의 행동에 대해 불안해 하는 캐릭터들이 많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박통의 말을 100프로 믿고 있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연기의 레이어를 과감히 제거해야 했어요. 곽상천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죠. 곽상천에게 ‘당신은 1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도 아니라고 했을 것 같아요. 오직 각하를 위해서 각하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돕는 사람이 바로 곽상천이죠.”


레이어를 제거한 직설적 연기는 배우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런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이희준은 “초반에는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이렇게 해도 되나’, ‘나 다 했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어색했다”고 털어놨다.



“처음 기술 시사 때 영화를 보고 많이 불안했어요. 전체적으로 다들 아주 날카로운 칼날처럼 연기했다면 전 너무 큰 통나무처럼 연기를 했거든요. 제 스스로 ‘덩어리’ 연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사실 제가 서브 텍스트가 있는 인물을 즐기는 편인데, 이번엔 그런 레이어를 다 빼야 했다. 곽상천이 혼자 다른 생각을 하는 모습이 따로 장면으로 그려졌다면 인물의 색깔이나 영화의 톤이 또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이 영화에선 이런 연기가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희준은 영화를 끝낼 때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진다고 했다. 그는 “나와 견해가 다르거나 뭔가를 종교처럼 맹신하는 사람을 만나도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13년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최근 ‘1987’, ‘미쓰백’ 등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던 배우 이희준.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은 ‘심장이 뛰게 하는 작품’이다. 대본을 보고 흥분되고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확 뛰는 작품을 선택한다고 했다.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의 심장을 자극하는 작품은 꼭 선택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를 위해서거나, 비중을 먼저 생각하거나 하는 것 보단 절 가슴 뛰게 하는 작품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며 웃음을 보였다.

100kg 가까이 몸을 불렸던 이희준은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와 인터뷰 현장에 나타났다. 불교 신자인 그는 108배를 하면서 ‘체중에 대한 결벽’을 이겨냈고, 촬영 후엔 헬스장 바로 앞에 있는 고시원을 잡아서 고강도의 헬스로 체중감량에 도전했다. 화보촬영 일정도 잡아서 목표를 세워 체계적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배우를 하다 보니 이렇게 먹어도 될까란 죄책감이랄까. 체중에 대한 결벽이 생겨요. 이렇게 나온 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죠. 땅콩버터를 잔뜩 바른 토스트로 살을 찌웠는데, 촬영후에 바로 끊고, 다이어트에 돌입했어요. 헬스장과 고시원을 왔다갔다하면서 닭가슴살만 먹고 운동을 했어요. 다이어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남산의 부장들’에서 신체 가면을 쓰고 한 연기 경험은 정말 배우로서 놀랍고 신비한 경험이었죠.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한편, 이희준은 올 상반기 주연을 맡은 영화 ‘오! 문희’의 개봉을 비롯해 배우 박해수, 수현과 호흡을 맞춘 드라마 ‘키마이라’로 관객을 찾아 올 예정이다.

[사진=쇼박스 ]

정다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