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문화계 여성인권 여전히 취약...면죄부 찾지 않고 해결 노력"

지난해 성평등예술지원 소위 구성

실태조사·제도 개선안 도출 독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미안합니다. 더 잘하겠습니다. 예술이라는 경이적인 대상과 예술인이라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귀한 분들 앞에 두려움으로 서 있습니다. 함께하고 있는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취임 첫날부터 고개를 숙였다. 박 위원장 자신이 문화계 현장의 연극연출가로서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대상)’에 이름이 올라 불이익을 당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고통받고 불안해 하는 예술인들 앞에서 거듭 사과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지난 1년4개월여 동안, 취임 초반은 그 사태로 허물어진 조직을 추스르고 무너진 예산구조를 바로잡는 데 몰두했다.

“새로운 10년을 위한 계획을 ‘아르코(ARKO·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약자) 비전 2030’이라는, 함께 만든 약속으로 공표했습니다. 예술가의 창작 터전을 튼실히 하고 예술로 풍요로운 삶을 지키며 삶과 사회를 치유하는 예술을 지원하는 것 등의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마련해 ‘현장소통소위’ ‘지역협력소위’ ‘성평등소위’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초인적인 힘을 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쉬운 과제가 아니더군요. ‘블랙리스트의 끝이다’를 선언하기는 아직도 어려운지라 그 과정을 지나는 중이라고 하는 게 옳겠습니다.”


그렇게 달려왔건만 지난해 말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7기 신임 비상임위원 선임 과정에서 후보자 16명 중 여성이 한 명도 없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성차별’의 비판을 받아들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선임 절차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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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결단은 달리던 열차를 세워 다시 출발하게 한 것에 빗댈 정도로 이례적입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는 뜻의 성폭력 피해 폭로 운동)‘와 ‘블랙리스트’ 사건을 겪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 반성해야 할 테죠. 마침 어제 극단 미인의 ‘아버지’라는 연극을 봤습니다. 가공인물인 딸과 아버지의 사연에는 우리 시대의 경험이 배어 있었는데, 세대 간 갈등구조를 얘기하면서 합의와 화해의 손 내밈이 있는 따뜻한 연극이었어요. 5,000년이 넘은 남성지배구조를 시간에 맡긴 채 변화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느 성(性)도 구성원의 6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권고가 아니라 법입니다. 다원예술을 위한 별도 지원이 있었던 것처럼 성인지와 성평등에 관한 한 일정 기간은 별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위원장은 전문성과 행정력을 갖춘 여성이 많이 있음에도 정책과 경영 고위관리직에 여성이 적은 것은 결국 가사·육아 문제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렵고 경력이 단절되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화계는 여성 진출이 활발한 동시에 ‘미투’로 확인됐다시피 여성 인권의 취약함이 공존한다. 문예위는 지난해 ‘성평등예술지원소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게 해 성평등 예술지원 생태계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와 제도 개선안 도출을 독려하고 있다.

“더디더라도 올바르게 가야 합니다. ‘아르코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도 ‘우리는 빠르게 가는 길이 아니라 바르게 가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현장과 거듭 상의하며 면죄부를 찾지 않고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위원장의 고개 숙임이 당당한 이유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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