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이날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억6,536만2,304달러(약 1,965억6,617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중 약 21%를 북미 시장에서 벌어들였다는 점은 영화의 전 세계적인 흥행에 탄탄한 주춧돌이 됐다. 지난해 10월 미국 내 3곳에서 개봉한 영화는 현재 입소문과 각종 국제 무대에서의 수상 효과로 1,000여곳까지 상영관이 확대된 상태다. 아카데미상에서의 놀라운 쾌거로 세계 흥행 돌풍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는 현재 영국·프랑스·스위스·호주 등 전 세계 67개국에서 개봉된 상태이며 핀란드·불가리아·인도 등의 국가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관객이 ‘기생충’에 열광하는 이유로 국내외 언론과 평단은 빈부 격차와 계급 간 갈등이라는 세계 보편적인 문제를 한국적인 문법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을 꼽는다. 윤성은 평론가는 “자본주의가 조장한 계층 간, 계층 내 갈등이라는 ‘기생충’의 주제의식과 여러 장르를 혼합한 봉준호 감독만의 신선한 블랙코미디, 유머감각이 아시아·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공감대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북미 배급사 네온의 톰 퀸 최고경영자(CEO)는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위층-아래층’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영화에는 악당도, 무고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이가 기생충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 자본주의 안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반지하라는 가장 한국적인 배경이 주는 신선함과 정교한 영화 속 배경, 외국 영화의 고질적 한계로 꼽혀온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일조한 번역의 힘도 ‘기생충’ 돌풍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특히 우리말을 영어 자막으로 옮긴 번역가 다시 파켓은 한국 관객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으로 우려됐던 맛깔스러운 대사를 뉘앙스와 상징성을 잘 살려 번역해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아카데미까지 석권한 기생충이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배경에는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내 경제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경제 전문가 척 콜린스의 저서 ‘미국의 불평등은 돌이킬 수 없는가’에 따르면 최상위 20명의 억만장자가 하위 인구 50% 전체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부유한 100명의 억만장자가 가진 자산은 4,200만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 많다. 앞서 봉 감독도 영화 산업의 메카인 미국에서 ‘기생충’에 보내는 뜨거운 관심에 대해 “이 영화는 결국 가난한 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라며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미국에서 더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주제보다 더 세계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다룬 봉 감독 특유의 방식이다. DC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조커’ 역시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불평등 이슈를 다뤘지만 더욱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기생충’이다. 국내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봉 감독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재치 있는 연출 스타일이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가장 보편적으로 풀어낸 봉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배급을 맡은 CJ ENM의 한 관계자는 “북미 현지 상영관에서 ‘기생충’을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한국 관객들이 웃는 대목에서 웃는다”며 “정말 계급 문제를 보편적으로 풀어낸 것 같다”고 전했다.
여기에 봉 감독 특유의 재치 있는 촌철살인 입담 역시 ‘오스카 캠페인’ 내내 주목을 끌며 아시아 감독으로서의 정서적 진입 장벽을 허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의 재치 있는 입담에 ‘오스카 캠페인’ 내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BongHive(봉하이브)’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해 ‘기생충’의 화제성을 더했다. ‘벌집’을 의미하는 ‘하이브(hive)’라는 단어를 붙인 ‘봉하이브’는 봉 감독에 대한 열성적 팬덤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