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지분팔고 수탁자책임위도 구성 못한 국민연금 한진 경영권 개입 명분 잃어

1315A13 국민연금의 한진칼 보유지분 변화



‘조원태 연합’과 ‘조현아 연합’이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의 한진칼(180640) 지분율이 지난해 4월 이후 공개되지 않아 주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특히 주식을 팔아 지분율이 하락하고 주주제안을 결정하는 수탁자택임전문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해 경영권 개입의 명분조차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분율이 5%를 넘지 않으면 변동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5%룰’에 따라 지난해 4월 한진칼 지분율이 4.11%로 5% 아래로 떨어진 뒤에는 변동사항을 공시하지 않고 있다. 조원태 연합과 조현아 연합이 각각 30% 초반대 지분을 확보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지분 30%가량을 보유해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는 소액주주들은 정작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율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깜깜이 주주총회’를 치러야 하는 처지다. 국민연금은 한진칼과 관련해 주총에서 밝힐 의견을 결정할 수탁위원회조차 아직 열지 못해 시장의 혼란만 키워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체 소액주주 지분에 비해 얼마 안 되는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경영권 분쟁의 키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모습 자체가 시장논리를 벗어난 기이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재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3%룰(지분율 3% 이상 보유 시 지분변동 현황 의무공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4월23일 한진칼 지분율이 5.36%에서 4.11%로 줄었다고 공시한 후 지분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민연금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6월 말 기준 3.45%로 줄었다고 밝혔지만 이후 지분율 변동은 알려진 바가 없다.


한진칼 소액주주들은 주요주주의 정확한 지분율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시장에는 “의결권 지분이 2%대로 줄었다” “지분율이 미미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만 흘러다니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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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은 지난해 12월 주주명부를 폐쇄하면서 주요 주주들의 정확한 지분율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불법이다. 주주의 경우 다른 주주의 지분보유현황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다. 한진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주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국민연금의 지분율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현행법에 따라 밝히기 어렵다”며 “증권가 리포트를 비롯해 언론보도에서 언급되는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제각각이지만 이를 바로잡는 것도 법 위반 소지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초 국민연금은 사외이사 풀(Pool)을 마련해 이사진 추천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진칼과 대한항공(003490) 주주총회가 약 6주가량 남은 상황인데도 수탁자전문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진그룹 경영진은 이미 재무구조개선과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은 아직 방향성조차 정하지 못한 것이다. 조만간 조현아 연합이 내놓을 주주제안을 확인한 후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소액주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3%룰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재계는 기업의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공적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지분변동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행 5% 이상 주주에게만 공시의무를 지우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경영을 어렵게 하고 정보의 비대칭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상법상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임시주주총회를 요청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3% 이상 주주의 지분변동 공시는 당연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기업의 지분 5%는 엄청난 영향을 발휘한다”며 “소액주주들은 물론 예비투자자 입장에서도 주요 주주의 지분율 정보는 매우 중요한 투자지표인데 현재는 5%룰 때문에 현격한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김민형·박시진기자 kmh204@sedaily.com

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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