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분양

[여명] 14차례 바뀐 청약제도, 공정한 배분일까

이종배 건설부동산부장

청약제도 '공정한 배분' 목적인데

현 정부 들어 무려 14차례나 개정

공정배분 사라지고 소수집단 특혜

분양가상한제 확대와 맞물리면서

청약전선 소외된 계층 분노 더 커져




서초 반포와 여의도에 들어선 아파트. 지금은 낡고 오래됐지만 지난 1977년에는 시쳇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당시 선착순 방식으로 분양됐는데 여의도 목화아파트의 경우 312가구 공급에 1만4,000여명이 청약했다. 통행금지 시절이다 보니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인파가 몰리면서 접수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곤 했다. ‘웃픈’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반포 2·3지구 분양 당시 ‘불임 시술자’에 대해 우대한 것. 인구 정책과 아파트 분양을 연결시킨 것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1976년 말까지 8만여명에 그쳤던 영구 불임자는 1977년 8월 말 14만여명으로 늘었다. 반포아파트 분양 당시 조간신문에는 70대 노인의 인터뷰가 실렸다. 내용은 이렇다. “45세 이상은 시술 효과가 없다고 보건소에서 무료 시술을 안 해준다. 나이 많은 것도 서러운데 청약 순위에서 차별하느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고민했다. 그전까지 아파트의 인기가 높지 않아 선착순이나 번호표 추첨만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데 무리가 없었는데 사정이 달라져서다. 체계적인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주택청약 제도를 담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5월부터 본격 가동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택공급 규칙은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공정한 배분’이 목적이다. 그해 공공주택에 먼저 적용된 뒤 이듬해 민영주택까지 확대되면서 모양새를 갖췄다. 초기에는 규칙이 단순했다. 공공주택과 민영주택으로 나눠 청약통장과 자격을 나눈 것. 공공주택은 무주택 세대주에게, 민영주택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것이 그것이다. 1순위 자격자 중 추첨에 6번 이상 떨어지면 0순위 우선 당첨권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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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청약제도는 수많은 부침을 겪게 된다. 불임 시술자에 대한 우대조치는 1997년부터 사라졌다. 1983년부터는 0순위 통장제도가 폐지되고 채권입찰제, 재당첨 규제 강화책이 시행됐다. 1990년대에는 당첨 전력자나 1가구 2주택 이상 소유자는 모두 1순위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라 분양 가구의 20배로 제한하는 ‘20배수제’도 시행됐다. 1999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분양 열기가 가라앉자 청약통장 1세대 1계좌 원칙이 폐지되는 등 규제가 일부 완화되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청약 1순위 보유자 중에서도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기간 등에 따라 각각 점수를 매겨 총점이 높은 순으로 당첨에 혜택을 주는 ‘주택청약가점제’가 시행되기에 이른다.

청약제도가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은 이유는 역대 정부가 청약제도를 주택 경기 부양과 과열 진정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주택공급규칙 연혁을 보면 제도가 만들어진 42년 동안 무려 144차례 개정된다. 1년에 평균 3차례 이상 개정된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약제도가 더 자주 바뀌었다는 점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주택공급 규칙은 14차례 옷을 바꿔입었다. 필자 역시 청약제도를 머리에 꿰고 있었으나 14차례 바뀌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다. 이 과정에서 가점제 물량이 늘어나면서 1주택자가 새 아파트를 당첨 받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당첨 받으려면 기존 주택처분서약 각서까지 써야 한다. 그렇다고 무주택자가 좋은 것도 아니다. 경쟁률이 높아지고 대출 규제가 세지면서 가점이 낮은 30대와 현금 없는 무주택자는 청약 전선에서 소외되고 있다.

정부는 잦은 청약제도 개편에 대해 ‘공정한 배분’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까. 오히려 소수 계층만 더 이득을 보는 것이 요즘 청약제도다. 분양가상한제 확대로 앞으로 쏟아질 로또 아파트 역시 이들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 될 것이 뻔하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싶어도 봉쇄된 계층의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ljb@sedaily.com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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