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온 지구가 경탄과 감동으로 떠들썩하던 그 순간, 달에서 촬영된 영상 속 우주인이 순백색의 우주복을 입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회색빛 달 표면을 걷는 모습은 고요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인간의 신체를 보호하는 우주복을 만드는 일은 ‘1인 우주선’을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당시 우주선을 제작한 미국 과학자들은 제작비용을 낮추고 더 많은 짐을 싣기 위기 우주선의 벽을 두껍게 하기보다는 압력이 낮은 산소로 내부를 채우는 방식을 택했다. 종이, 나일론, 벨크로 등이 많이 사용된 초창기 우주복은 높아진 산소 농도때문에 작은 불꽃에도 발화되는 문제가 있었다. 착륙 이후에는 영하 190도~영상 150도를 오가는 달 온도를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과학자들은 프라이팬 코팅제 테플론이 발린 방화 직물부터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진 단열층, 소방복에 사용되는 노멕스, 극단적인 온도변화를 견디기 위한 캡톤 등4,000여 조각의 직물을 21개의 층으로 쌓아 올린 새로운 우주복을 만들었고, 덕분에 인류는 달 탐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신간 ‘총보다 강한 실’은 오랜 기간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던 섬유로 인류사를 풀어낸 책이다. 대부분의 역사인문서가 강하고 파괴적인 것들 위주로 서술돼 온 것과 달리, 미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복식사를 전공한 저자는 권력과 힘이 만들어낸 역사의 장면들 대신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인류사를 바꿔온 ‘실’에 주목했다. 인류 최초의 실을 찾아낸 조지아의 동굴부터,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세계 교역의 시작, 중세 유럽 왕족들의 레이스 경쟁, 흑인 노예들의 인상착의로 본 미국 노예제, 전신 수영복의 탄생까지 실과 직물에 얽힌 13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천과 옷을 생산하는 일은 어느 시대나 세계 경제와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한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섬유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몸을 감싸주며,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는 육신을 덮어준다. “책에서 눈을 떼고 자기 자신을 보라. 옷으로 둘러싸인 당신의 몸이 보일 것이다” 라는 문장을 책을 시작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인류는 천을 만들어낸 덕택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1만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