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002320)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 측 간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대한항공 노동조합과 전직 임원들이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조 전 부사장과 행동주의펀드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주주연합은 8명의 이사를 추천하는 주주제안과 함께 추가 지분 매입에 나서며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 노조와 전직 임원들이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준데다 주주연합이 내세운 이사 후보들의 전문성 결여 논란까지 제기돼 업계에서는 주주연합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14일 성명서를 통해 “주주연합의 주주제안은 기상천외한 공모”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조는 “조 전 부사장 연합의 주주제안에 분노하고 경고한다”며 “전문경영인으로 내세운 인물은 항공산업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조 전 부사장의 수족”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한항공 OB임원회도 “항공사에서 근무했다고 다 같은 항공 전문경영인이 아니다”라면서 “주주연합의 추천 이사들은 과대 포장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OB임원회는 퇴임한 전직 임원들 500여명이 속해 있다.
대한항공 노조와 OB임원회가 일제히 주주연합을 비판한 것은 이사 후보의 적격성 때문이다. 주주연합은 전날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을 전문경영인으로,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과 김치훈 전 대한항공 상무, 함철호 전 티웨이항공 대표를 사내이사로 추천했다.
노조와 전직 임원들은 김신배 후보와 배경태 후보는 항공업에 대한 이해 부족과 글로벌 네트워크 부재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과거 대한항공 상무 시절 조 전 부사장과 함께 호텔 사업을 담당했던 김치훈 후보는 지상조업 업무를 주로 해서 항공·여객·화물 등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반대 이유로 꼽혔다.
대한항공 노조와 OB임원회가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며 사실상 조 회장의 우호지분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 자가보험·사우회·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한진칼(180640) 지분 3.8%가 조 회장 측에 포함되는 셈이다. 아울러 전·현직 임직원이 보유한 개인 지분까지 조 회장의 우호지분 세력에 편입될 경우 우호지분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은 지난달 31일 우한 전세기에 탑승한 뒤 약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끝내고 최근 외부활동을 재개했다. 조 회장은 이달 말 한진칼·대한항공·㈜한진의 주총 관련 이사회를 대비해 마지막으로 의견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회사의 이사회에서는 KCGI 등이 제출한 주주제안에 대한 의견이 다뤄질 뿐 아니라 주총 날짜 확정, 재무제표 승인, 이사 신규 선임 및 재선임, 결산 배당, 정관 변경 등의 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전자투표 도입 여부, 사내외 이사 후보, 이사보수 한도 등에 대해 구체적인 안건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진칼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음달 조 회장과 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의 이사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재선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변호사의 경우 개정된 상법에 따라 6년 이상 사외이사 연임이 금지돼 다른 후보로 교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조 회장 측은 조 회장 재선임 여부와 상관없이 최소 5명 이상의 신규 이사를 추천해야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주연합이 내놓은 주주제안이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조 회장 측에서 어떤 반격 카드를 꺼내놓느냐에 따라 소액주주(30%)의 표심이 갈릴 것”이라며 “주주연합이 이사진 후보를 8명 내놓은 만큼 조 회장도 비슷한 수의 이사진 후보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날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한진칼 현 경영진과 KCGI 양측에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소모적·감정적 대결을 지양하고 장기 경영정책, 회사와 주주 가치 제고,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양쪽의 건전한 경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한진그룹과 KCGI 양측에 소수 주주를 상대로 한진그룹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계획과 주주가치 제고 정책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장으로 공개 토론회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진칼 경영진과 KCGI가 이 제안에 응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