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102년 2월18일 칼리 유가(Kali Yuga)로 접어들었다.’ 인도의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어 기록의 일부다. 유가(Yuga)란 시대(age)라는 뜻. 인도인들의 신앙인 ‘사나타나 다르마(Sanatana Dharma·영국인들이 붙인 이름으로는 힌두교)’에 따르면 칼리의 시대는 말세의 시기다. 정법과 진실이 모두 살아 있는 시대(크리타 유가 혹은 사트야 유가)에서 시작한 인간 세상은 법과 진실이 갈수록 약해지는 두 시기(트레타 유가와 드와라파 유가)를 거쳐 마침내 악이 선을 압도하고 물질 만능의 시대인 칼리 유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도의 신앙을 계속 따라가 보자. 말세인 칼리 유가에도 희망은 있다. 희미하게나마 정법이 살아 있어서다. 올바름(正法)을 지탱하는 네 다리가 모두 온전한 시기에서 점차 다리가 떨어져 칼리 유가에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옳고 그름은 판단한다. 말세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말세가 지나면 다시금 황금기로 돌아가고 영원토록 윤회의 과정을 밟는다. 황금기부터 말세까지 4시기를 합친 마하 유가는 43억년에 이른다. 마하 유가 1,000개가 모인 시간이 1카르파(劫). 카르파가 억 개 모인 시간이 억겁(億劫)이며 불교에서도 사용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가짜 신과 온갖 범죄가 들끓으며 돈이 제일인 세상(칼리 유가)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해석이 분분하다. 칼리 유가의 기간을 43만년에서 5,000여년까지 달리 보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세기말을 앞두고는 칼리 유가와 관련된 종말론이 기승을 부렸다. 2012년과 2018년에도 종말론이 휩쓸었던 적이 있다. 인도 고대신화가 허황하다고만 말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불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생성순)의 경전과 인도 신화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으니까. 미국의 비교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여러 민족의 신화를 세계 곳곳에서 다른 언어로 동시 상영되는 영화라고 정의한다(신화의 힘).
교리의 비교 우열에 대한 관심을 떠나 인도인의 사유 체계에 대한 연구는 우리에게 절실하다. 거대 중국의 성장세가 지속하지 않는 한 새로운 시장으로 인도만 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무역국가들이 처한 상황이 똑같다. ‘불합리한 전근대적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는 야만 지역’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인도의 역사와 본질을 탐구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시장의 개척도 가능하다. 시간을 측정의 단위가 아니라 주기적인 순환(윤회)이라고 보는 인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때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