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까지 전세계를 호령했던 스웨덴의 조선산업은 70~80년대 들어 급격한 위기를 겪었다. 급기야 스웨덴 항구도시 말뫼시에 있던, 스웨덴의 조선산업을 상징했던 1,500톤급 크레인은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국내외 언론은 이를 두고 ‘말뫼의 눈물’이라며 스웨덴 조선산업의 붕괴를 기정 사실화했다. 스웨덴의 예테보리도 마찬가지다. 조선산업이 붕괴하면서 2만명이 실직했다. 지역 내수도 냉각돼 회생 기미가 쉽게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예테보리는 경쟁력 없는 조선산업 대신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성장 엔진’을 완전히 갈아 끼운 것이다. 그 결과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은 3.3%로 스웨덴 평균치(2.8%)를 훌쩍 뛰어 넘었다. 취업자 증가율도 평균치(1.1%) 보다 높은 1.6%를 기록했다.
예테보리가 변신에 성공한 것은 잘 짜여진 산학협력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1996년 예테보리는 조선산업이 붕괴된 후 미래 성장산업으로 신재생 에너지를 채택하고, 조선소 부지를 매입해 지식센터와 과학단지를 지었다. 여기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주시켰다. 자연스레 대학과 기업, 그리고 연구기관간 협력 네트워크가 조성됐다. 도시재생 프로젝트까지 가미되자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장지대)였던 예테보리는 첨단도시로 변모했다.
독일의 브레멘시와 브레머하펜시도 스웨덴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업체들이 줄파산 하면서 지역 경제에 위기가 찾아 왔다. 독일 역시 스웨덴처럼 신재생인 해상풍력 산업 육성에 나섰다.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전담기구와 연구기관을 유치했다. 독일은 올해까지 북해·발트해 주변에 원전을 대체할 40여개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는 등 글로벌 풍력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국내 산단 가운데 60여개를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쇠락해 가는 국내 산단을 되살리기 위해 스웨덴과 독일 사례를 벤치마킹한 ‘코-이노베이션(Co-Innovation)’ 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사업 개시를 위한 마지막 절차인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산단공은 빠르면 내년부터 2029년까지 7,245억원들여 산학연 생태계를 구축키로 했다. 산단공 관계자는 “산단에 입주해 있는 개별기업만으로는 기술경쟁력 확보가 더딜 뿐만 아니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는 기업이 수직적 구조를 벗어나 자생력을 확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 갈등 재발 우려가 여전하고 코로나19와 같은 신종바이러스가 퍼져 글로벌 물류가 올스톱되는 위기가 찾아오면 힘없는 개별 기업이 혼자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산학연 협의체 같은 생태계가 더 절실하다는 게 산단공측의 설명이다.
실제 국가별로 기업간 기술협력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22위에 그친다. 기업들이 많이 모여 협력을 해야 성과를 빨리 낼 수 있는데 적절한 파트너를 찾지 못해 순위가 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산단공은 ‘코-이노베이션’ 사업을 신청할 때 산학연협의체 내 최소 5개 기업과 지원기관을 구성하도록 제한을 둬 협업의 확장성을 키우기로 했다.
산단공이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곳에서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강원 원주에 있는 친환경 물산업 기업 뉴보텍은 산단공 주도로 지반침하 예방 기술을 확보해 노후관을 대체하기 위해 4곳과 협업했다. 한 곳은 위치정보 클로우드를 기반한 시설 관리시스템을 만들고, 한 곳은 노후관 보수 기술을 연구하고, 다른 곳은 배관과 새로운 배관과 부속자재를 개발하는 식이다. 2018년부터 시작한 이 과제는 1년 만에 지자체·공공기관과 총 14억원 규모의 공사계약 4건의 결실로 이뤄졌다. 특허 등록 2건, 특허 출원 7건 등 지식재산권 확보와 10명의 신규고용 효과도 발생했다. 산단공 관계자는 “산단 내 중소·중견기업은 자체 연구개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산업·기술·기업 간 협업을 지원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