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 A사의 직원들은 지난해 3월 주총 안건 동의를 받아내기 위해 주주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특히 그 해엔 감사 선임 안건도 포함돼 있어 소액주주들의 동의가 중요했다. A사는 이미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었다. 그럼에도 발품을 팔아야 했던 이유는 전자투표제 참여율이 1%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A사 관계자는 “주주명부에 나와 있는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밖엔 방도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A사 사례처럼 전자투표 대상 주주 중 이를 활용한 이들은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이 폐지된 후 그 ‘보완재’ 기능을 해줄 걸로 기대됐던 전자투표제마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실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의 전체 주주 중 실제로 전자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전체의 1.13%에 그쳤다. 그나마 전자투표제 참여율이 1%를 웃돈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다.
전자투표제는 소액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 2010년 도입됐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소액 주주들의 전자투표 이용은 저조하다. 실제로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의 전체 주식 수 대비 전자투표에 쓰인 주식의 비율(행사율)은 지난해 5.06% 수준으로 주주 참여율보다 높았다.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투자자가 오히려 소액주주보다 전자투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의미다. 이는 ‘감사 선임 대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정기주총에서 감사·감사위원 등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 수는 2018년 76개에서 2019년 188개로 급증했다. 업계에선 감사위원 선임시 의결권행사를 제한하는 3%룰과 섀도보팅 폐지가 맞물린 가운데 이 같은 추세가 더 심해질 거라고 보고 있다.
전자투표제가 부진한 이유론 국내 소액 투자자가 단기 투자를 선호한단 점이 꼽힌다. 기업 경영과 상관없이 주가 등락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총과 전자투표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기관투자자가 비교적 적은 중소 상장사의 경우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대표적인 사례로 ‘손바뀜’을 꼽는다. 중소 상장사에 투자한 주주들은 양도세 회피와 배당락 등의 이유로 12월에 주식을 파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12월 결산법인들이 주주명부를 12월에 확정한다는 것이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중소형 상장사에선 주주명부에 올라 있는 주주와 주주총회 당일 실제 주주가 다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잇따라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긴 하지만, 이것이 전자투표제의 ‘효용’을 높일지는 미지수인 건 이 때문이다. 현재 국내 상장사 가운데 54%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투표 참여율이 낮은 이유다.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성일종 의원은 “전자투표·전자위임장 제도의 단계적 의무화 등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선 ‘의안 분리’ 등을 통해 ‘실제 주주’가 주총에 참여할 유인이 전제돼야 한단 입장이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배당은 명부상의 주주가, 회사의 임원선임 등은 실질 주주가 각각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선 의안 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상장사 주식이 고도로 분산되고 개인주주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상황”이라며 “3%룰 완화와 발행주식 총수 기준 결의요건을 완화하거나 출석 주식 수 기준 요건만을 적용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