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족쇄’에서 벗어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논란이 있는 인사들에 대한 사면·감형을 단행하는 한편 대중 수출규제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 내부 경선이 본격화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둔화 여파가 미국에까지 미칠 조짐이 보이자 경기를 떠받치고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면 및 감형권을 행사해 총 11명에 대해 유죄 선고의 효력을 없애거나 형량을 줄여줬다. 문제는 이들이 논란의 대상인데다 트럼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80년대 부실채권(정크본드) 투자로 월가를 주름잡던 마이클 밀컨을 사면했다. ‘정크본드의 황제’였던 밀컨은 1990년 내부거래가 발각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2개월을 복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의 말을 듣고 밀컨을 사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감형 대상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매관매직 혐의로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며 오바마를 비난해온 로드 블라고예비치 전 일리노이 주지사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의 측근 버나드 케릭 전 뉴욕시 경찰국장도 포함됐다. 블라고예비치는 2010년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하던 NBC방송의 인기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출연했다.
미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최측근이자 2016년 대선의 밑그림을 짠 로저 스톤에 대한 검찰 구형(7~9년)을 낮추려고 한 데 이어 또다시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에서는 국가적 스캔들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과도한 권한 행사라는 불만이 제기됐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중범죄자들, 화이트칼라(사무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사면권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탄핵 종결 후 측근과 지지세력을 다시 끌어모아 대선에 대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지금까지 중국 화웨이를 옥죄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산 장비를 쓴 반도체의 화웨이 수출 제한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나는 우리 기업들이 사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반도체나 다른 여러 분야의 국가안보와 상관없는 사안들을 내 책상에 갖다놓는데 우리가 그걸 중단한다고 치자. 그들(반도체 제조사)은 중국이나 다른 장소에서 그것(반도체)을 만들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으로의 기술수출을 막으려는 행정부의 노력을 막은 것”이라며 “놀라운 반전”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항공기 엔진 수출규제에 대해서도 “나는 중국이 세계에서 최상인 우리의 제트엔진을 구매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애플이 1·4분기(1~3월) 매출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다우존스지수 3만선 돌파를 눈앞에 뒀던 증시가 비틀거리자 경제 챙기기에 나선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대통령이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보다 경제적 이득을 우선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별도로 미 연방법관협회는 이날 ‘로저 스톤 건’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법무부 사건 개입 논란이 심각하다고 보고 지도부 긴급전화회의를 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전직 법무부 관리의 서명도 2,000명을 넘어서 파장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