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여러 사람이 애쓰고 있다. 확진자는 물론 의심증상을 보이는 사람, 확진자와의 접촉 이력으로 격리된 사람, 어느 때보다 높은 강도의 청결 요구에 묵묵히 응하는 청소노동자, 일선 의료진,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 공항·항만의 검역 담당자, 그리고 바이러스의 영향을 전혀 받지는 않았지만 매일 뉴스를 지켜보며 걱정과 불안을 함께 나눈 이들이 있다.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새로운 전염성 질병의 위력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병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것은 그 원인물질이 어떤 여행자와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와 그 일행이 의도치 않게 전파한 유럽의 질병 때문에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고통받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탐사선을 우주에 보낼 때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지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미생물이 다른 환경의 천체에서는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며 지구에서 무임승차한 미생물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외계 생명체를 만났다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사선 안팎을 알코올로 소독하거나 열건조 처리를 하기도 한다. 거의 무균실 상태의 실험실 안에서 기기를 제작·조립하기도 한다. 임무를 마친 뒤 지구로 귀환하는 탐사선이라면 더욱 조심스럽다. 달에 다녀온 아폴로 우주인들은 혹시 달 표면에서 유해물질을 묻혀왔을 가능성을 염려해 3주간 격리되기도 했다.
가장 경계하는 것은 우리가 지구 밖 어느 천체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탐사선에 올라탄 생명체가 착륙지에 남겨져 어떤 형태로든 생존해서 번식에 성공한다면, 거기에서도 다윈의 생명 나무와 같은 종의 분화가 일어나고 각자 다르게 진화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곳은 제2의 지구로 변모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에서도 잔인한 포식자를 절멸시키거나 가여운 피식자를 집중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생태계를 존중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지구 밖 우주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는 없다.
지구도 한때는 황량한 곳이었다. 태양계 생성 초기, 원시 지구는 온도가 섭씨 380도에 이르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물이나 유지물질은 증기가 돼 날아가버렸고 금속과 암속의 주재료가 되는 물질들만이 남아 천천히 냉각됐다. 그래서 초기 지구는 금속의 핵을 암석으로 된 맨틀이 둘러싸고 표면은 온통 식은 마그마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 지구에 물과 유기물질이라는 생명의 씨앗을 가져다준 여행자가 있었다. 인류가 탐사선을 쏘아 올리기 훨씬 전부터,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이저호가 태양계의 여러 행성을 차례차례 방문하기 전부터 태양계를 누비던 여행자, 소행성과 혜성이다.
여행자의 고향은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대단히 춥고 어둡다. 그곳에서는 금속과 암석 물질, 그리고 태양계 생성 초기에 멀리 불려 나갔던 물과 유기물질이 섞여 꽁꽁 얼어붙은 채 동면 상태로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멀리서 지나가는 별이나 행성들의 사소한 섭동이 ‘넛지(nudge)’가 되면 태양 근처로 향하는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태양에 가까워지면서 온도가 올라가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함께 포장해준 드라이아이스를 꺼냈을 때처럼 얼어붙어 있던 물질들이 기화되며 기다란 증기 꼬리가 생긴다. 먼지 덩어리도 간헐적으로 떨어져 나가 여행자가 지나간 길을 점점이 수놓는다. 때로는 혜성 조각이 떨어져 나오기도 한다. 혜성·소행성의 잔해나 행성 간 먼지 입자가 지구를 만나면 유성이 돼 밤하늘에 긴 빛의 띠를 만들며 대기 중에 타오르기도 하고, 그전에 지표면에 도달해 운석이 되기도 한다. 종착지가 대기든 지표면이든 바다든 간에 우주에서 온 물질이 지구에 흡수되는 것이다. 어떤 혜성은 태양계 밖에서 우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생성 초기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뒤, 메말라 있던 지구를 격렬하게 방문했던 수많은 여행자 덕분에 지구는 곧 드넓은 바다를 가진 푸른 행성이 됐고 바다는 생명을 잉태했다. 꿀벌이 꽃밭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수분하듯이 혜성과 소행성, 그리고 작은 먼지 입자들이 지구에 생명을 가져온 것이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고 인류와 문명이 발달한 후에도 여행자들은 종종 찾아온다. 생명의 씨앗 말고도 우주의 신비, 태양계의 경이로움을 알려줄 힌트를 하나씩 떨구고 간다. 혜성과 유성·운석을 통해 인류는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을 배운다. 새로운 질병 덕분에 우리나라도 많은 것을 발견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대처능력, 국민의 성숙한 태도, 그리고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자연의 한 조각을 탐구한다. 소행성과 혜성은 지구의 생명체를 몇 차례나 멸종시켰지만 그래도 지구에는 흐드러지게 생명이 꽃피었다. 위기를 이겨낸 우리의 마음속에도 곧 봄꽃이 간질간질 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