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이 발발하면 통상 경제는 급격한 하락과 급격한 반등을 가져오는 ‘V자형’ 패턴을 보인다. 외생적 충격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만 수개월이 지나 원상복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03~2004년 사스 발병과 관련해 ‘V자형’이라고 설명한다. 메르스가 발생했던 지난 2015년 우리 경제성장률은 2·4분기 0.2%에서 3·4분기 1.5%로 올라섰다.
그런 기대감이 너무 컸을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IMF의 지적처럼 코로나19는 일시적 충격”이라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직전까지 닷새 연속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고 속속 격리해제 되는 사람들이 나왔더라도 ‘일시적’이란 표현은 낙관적이고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IMF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IMF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V자형 시나리오를 언급한 건 기본 가정일 뿐이었다. 아직 바이러스의 전파속도와 억제라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어떤 구체적인 예측을 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게리 라이스 IMF 대변인은 최근 미디어브리핑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사스와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이 과거에 비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점을 감안할 때 아시아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도한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지나치게 국민 소비가 위축된다”며 정상적인 일상활동으로 돌아가자고 당부한 게 채 일주일이 되지 않는다. 그 사이 20일 하루에만 신규환자가 53명 추가됐고 지역사회 확산에 전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슈퍼전파’ 의심자가 발생했고 서울 종로구 확진자의 경우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선별진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했다. 지난 주말만 해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잠시나마 줄었던 걸 보면 경제심리 회복 분위기 속 허점이 노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찾아온 공포심은 처음보다 배로 크게 느껴진다. 병원·식당·어린이집·시장 등이 폐쇄되고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점점 외출을 자제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불안심리 확산은 소비와 관광 등 지역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에서의 부품공급 조달 문제로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으며 물류와 수출도 비상이다.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가 내수에만 영향을 미쳤다면 인접하면서도 공급망의 한 축인 중국은 수출까지 전방위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낮췄다.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최악을 맞이했다. 냉정한 진단이 선행돼야 정확한 처방이 뒤따른다. V자형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L자형 장기침체에 대한 위기감이 절실해진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