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2월24일, 조선총독부가 ‘전라남도 소록도에 자혜원을 개설한다’는 령을 내렸다. 자혜원은 일제가 통감통치 시절인 1909년부터 전국 각지에 설립하기 시작한 근대식 병원. 소록도 자혜원은 다른 병원처럼 대도시 부근이 아니라 섬에 세웠다. 일본인 일반 환자를 받기는 했어도 처음부터 나병원(癩病院)으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총독부령을 발동하기 1년 전부터 남해안 일대를 탐색, 소록도를 최종 후보지로 찍었다. 총독부령 공표 이후 진행은 속전속결. 3월부터 토지 매입을 시작해 7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본관을 비롯해 50여개의 건물(총건평 477평)이 반 년 만에 완공되고 1917년 4월부터 한센병(나병) 환자들을 받아들였다. 아기 사슴처럼 보인다고 소록도(小鹿島)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섬이 최적지로 꼽힌 이유는 세 가지. 섬이면서도 육지와 가까워 물자 공급이 용이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수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나병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후진 아시아권에서 벗어나 서구문명국으로 진입하려는 일본의 국격에 걸맞지 않기에 추방과 격리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일본이 감추던 속내는 서양 선교사들과 조선 민중의 분리. 서양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부산과 대구, 광주의 나환자 요양시설이 효과를 거둘 경우 식민 통치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애초 의도가 생색만 내려는 전시용이었으니 규모가 100여명 수준으로 작았다. 일제가 파악했던 나환자 3만6,589명을 수용하기는 태부족. 초기 환자들은 의복과 식생활에서 완전히 일본식을 따랐다. 세월이 흐르며 소록도는 치유가 아니라 영구 격리시설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법적 근거도 없이 정관을 막고 임신도 허용되지 않았다. 강제 노역에 동원되고 해방 후에는 운영권 싸움에 휘말려 환자 84명이 학살된 적도 있다.
일제가 남긴 추방과 영구 격리를 개발연대의 한국도 물려받아 각종 차별과 인권유린이 벌어지던 소록도. 사라지는 한센병처럼 차별도 없어졌을까. 이청준은 소설 ‘우리들의 천국’에서 억압과 강요로 ‘당신만들의 천국’이 된 소록도의 현실을 그려냈다. 해방 직후 세계최대의 한센병 격리 시설이던 소록도는 지난 2009년 다리로 육지와 연결돼 관광지와 노인요양시설이 들어섰다. 소록도는 변해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진다. 소득과 생활 수준, 학벌, 사는 동네에 따른 보이지 않는 차별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대한민국의 어떤 단면은 과거 소록도의 확대판이라면 과할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