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피해가 커지고 있는 자영업자와 산업현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추경은 이제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올해 512조원의 초대형 예산이 짜여 있고 60조원의 적자국채를 찍어야 할 정도로 나라 살림이 어렵지만 경제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외면하기는 힘든 탓이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과거처럼 엉성한 집행이 반복될 경우 추경은 썩은 도끼자루를 넘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상황이 조금만 어려우면 추경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냈지만 집행 과정이나 효과는 부실 자체였다. 용처를 정하지 못해 불용예산으로 이월되는 일까지 생겼다. 지난해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급하다고 3조6,000억원에 이르는 적자국채까지 발행하면서 추경을 확정했지만 정작 부처들은 용처를 구하지 못해 법석을 떨었다. 결국 실업급여 확대 등 임시방편적 경기 대응을 전면에 내세우고 영화관이나 미술관 입장권 할인이나 제로페이 홍보 등 선심성 사업까지 포함하는 어이없는 광경을 연출했다. 이러니 야당이 반발하고 집행도 늦어져 나랏돈만 축낸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역대 추경 편성 때마다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나라의 명운이 걸릴 만큼 중차대한 시기이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예비비와 추경을 가리지 않고 긴급재정 투입에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도 절박한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대한 신속하게 추경을 진행하되 방역과 내수경기, 수출업체의 피해 등을 꼼꼼하게 파악해 나랏돈이 조금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