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사고일까, 사기일까” 라임 사태로 다시 보는 금융가의 흑역사들

스톱모션으로 보는 라임 사태 7분 총정리




#. A씨가 오랜 직장생활을 끝내고 난 다음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은행이었습니다. 퇴직금이 적지 않았기에 잘 저축해두면 ‘이자 생활자’로 살 수 있겠다 기대한 거죠. 하지만 정기예금 금리는 생각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0.1%라도 높은 금리를 찾아 헤매던 중 만난 게 바로 펀드였죠. ‘수익률은 정기예금보다 2배 높지만 예금만큼 안전한 상품’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한 AT씨는 “워낙 안전한 상품이라 가족한테도 추천했다”는 직원 말을 듣곤 당장 계약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개월 후인 지난해 10월 A씨는 자신이 투자한 펀드가 ‘환매 중단’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맙니다. 만기가 되도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몇 년 간은 못 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A씨는 억장이 무너졌죠. 국내 1위 헤지펀드 운용사로 꼽히던 라임자산운용이 벌인 대규모 환매중단, 일명 ‘라임 사태’에 휘말린 사람들의 대다수는 A씨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라임 사태’로 인한 피해는 1조 원 규모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라임 사태가 이정도 손해를 내기까지는 다양한 원인들이 거론되고 해석도 분분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국 라임이 판매한 펀드가 사실은 ‘너무 너무 너무’ 위험한 상품이었다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위험한 ‘헤지펀드’를 판매하는 것이 비록 불법은 아니라지만 A씨처럼 평범한 ‘금알못(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 만한 상품은 아니었다는 거죠. 나름의 장점이 있다지만 총이나 마약성 진통제를 제멋대로 구입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A씨는 이런 고위험 상품을 예금만큼 안전한 상품이라고 믿고, 안전한 상품만을 판다고 여겼던 은행에서 샀다고 합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그럼 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품을 팔아왔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라임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위험이 높을 수록 수익도 크다)’을 외치며 위험한 다리를 여러 번 건넜는데요. 핵심에는 ‘레버리지(지렛대)전략’이 있었습니다. 레버리지는 한마디로 빚을 내서 투자하는 전략인데, 예를 들어 내 돈 10만원으로 10% 수익률을 얻어봤자 1만원밖에 못 벌겠지만 내 돈 10만 원에 은행빚 90만 원을 합쳐 10% 수익을 낸다면 10만 원, 즉 자기자본의 100%까지 벌어들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레버리지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죠. 레버리지를 키우면 키울수록 이익만큼이나 위험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앞선 투자가 실패해 수익률이 -10%가 된다면 1만 원 잃고 그칠 일이 전 재산을 날리는 일로 커지는 겁니다.



라임은 각종 수단을 활용해 레버리지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는데요. 우선 ‘모자(母子) 펀드’ 구조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모자펀드란 하나의 엄마펀드(모펀드)에 여러 개의 자식펀드(자펀드)를 두고 자펀드의 자산을 모두 모아 모펀드가 통합 운용하는 방식입니다. 자펀드를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투자금 모집이 원활해지는 건데 라임은 3개 모펀드에 무려 157개까지 자펀드를 만들었다고 하죠. 더군다나 자펀드를 통한 자금 모집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6개월 만기 확정금리 제공’ 등의 예쁜 포장지를 씌우기까지 했다고 하죠. 딱 6개월만 자금을 넣어두면 예금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준다니 누구나 혹하지 않을까요.

모자펀드 역시 규모의 경제(생산량 혹은 투입량이 늘어남에 따라 평균 비용이 줄어드는 현상)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는 현명한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모펀드 실적이 좋을 때야 모두 웃을 수 있다지만 반대로 수익이 나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157개 펀드를 통해 모은 막대한 돈의 운명이 단 3개의 펀드의 실적에 따라 갈린다는 건데 이건 좀 위험한 투자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라임은 투자금을 더 늘리기 위해 대출도 최대한 끌어왔습니다. 라임이 운용하는 펀드는 고위험·고수익을 목표로 운용되는 헤지펀드로 분류되는데, 헤지펀드는 펀드 투자금을 담보로 순자산(투자금)의 40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임이 여러 증권사들과 맺었다는 TRS(Total Return Swqp·총수익 스와프) 계약이 이런 대출 계약인데요, 라임은 157개 자펀드를 팔며 모은 1조 5,587억 원을 담보로 5,000억 이상의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되면 앞서 말한 3개 펀드가 운용하는 투자금이 2조원 규모로 커진다는건데…이젠 1%의 수익률에 200억원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게다가 라임은 이 모펀드의 자금을 미국 국채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품이 아니라 코스닥 기업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의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상품), 비공개로 발행되는 사모사채 등 상당히 위험한 상품에 투자해왔다고 합니다.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죠. 이렇게 살펴보니 그동안 사고가 안 난 게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하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합법이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라임의 상품이 이토록 위험하다는 사실을 금융 소비자들이 과연 알았을까요. 분명 몰랐을 겁니다. 사실 대부분 금융파생상품은 용어 설명부터 너무 어렵고 수익 구조도 복잡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일반인들이 핵심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금융사들은 일반인들의 이런 ‘무지’를 적극 이용하죠. 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하는 ‘불완전 판매’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건·사고를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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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만 해도 투자금의 90% 이상 손실을 내 숱한 투자자들을 충격받게 했던 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가 있었습니다. DLF는 수익률은 연 4% 수준으로 제한돼 있는 반면 손실이 나면 원금 전액을 잃을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었죠. 하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식의 설명 속에 인기리에 팔렸습니다. ‘키코(KIKO·Knock In Knock Out)’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키코 역시 환율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경우는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품인데, 위험은 쏙 뺀 채 ‘환헤지(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환율을 미리 고정해 두는 거래방식)도 되고 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으로 포장돼 판매됐습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무심코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 급변동을 겪으며 회사가 부도날 정도의 손실을 입었죠.

폐쇄적으로 운용되는 헤지펀드의 경우 외부인이 내부 사정을 잘 모르기에 이런 위험성이 종종 더 커지곤 합니다. 장부 조작이나 횡령·배임 등의 금융사기를 일으켜도 알아내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라임도 금융사기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데 바로 ‘펀드 돌려막기’ 의혹입니다.



라임이 판매했던 ‘모자 펀드’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모펀드의 수익자는 자펀드만 될 수 있으며 자펀드는 모펀드가 발행한 펀드지분 외에 다른 펀드지분은 취득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즉, 엄마·자식 간의 관계가 뒤섞이거나 바뀌면 안 된다는 건데요. 하지만 라임은 모펀드 ‘플루토-TF1호’의 투자금을 미국 헤지펀드인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그룹(IIG)이 투자하는 무역금융펀드에 쏟아부었다가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을 입자 다른 모펀드인 ‘크레딧 인슈어드 무역금융펀드’에 모인 투자금을 가져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라임의 행동은 일명 ‘폰지 사기’로 불리는 다단계 금융사기나 다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폰지 사기’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며 큰 수익을 버는 사업을 하고 있는 척 속이는 사기 수법인데요, 실제로는 수익이 되는 사업을 하고 있지 않으니 끝내는 폭탄이 터지듯 거대한 손실을 입히곤 합니다. ‘희대의 사기꾼’으로 불리는 조희팔 역시 비슷한 수법을 통해 무려 4조원의 피해를 낳기도 했죠.

라임 사태에서 더 황당한 점은 폰지 사기 의혹을 받는 ‘플루토’ 펀드 역시 투자처인 IIG의 ‘폰지 사기’에 속았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는 점입니다. ‘폰지 사기’에 당한 ‘폰지 사기’인 셈이죠.



라임 사태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분명 금융인들의 부정도 한몫했을 겁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복잡한 파생상품과 돈에 눈이 먼 금융인들의 탐욕이 결합하면 범죄로 귀결되는 경우는 그동안 너무도 많았죠. 내부자 거래, 주가 조작, 분식 회계, 부실 투자 등 수법은 다양한데 국내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2010년 11월 11일 발생해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줬던 ‘도이치 옵션 쇼크’가 있습니다. 당시 도이치증권은 장 마감 10분 전에 2조원 이상의 주식을 한꺼번에 팔아 코스피를 50포인트 이상 급락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일을 한 이유가 파생상품의 시세 차익을 거두고 연말 실적을 올려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졌죠. 이들은 이 대량환매로 무려 448억원을 챙기는 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1,4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라임자산운용의 이종필 전 부사장 역시 기업의 부실 사실을 알면서도 채권을 매입하는 등 부실·부정 투자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현재 검찰수사를 거부한 채 도피 중이라고 하네요. 정말 허탈합니다.

물론 투자자들의 안이함이 문제가 됐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수억 원을 들여 금융상품을 사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적어도 이게 어떤 상품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좀 더 했어야 했지 않을까요.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금융사기에 속는 이유는 결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충분히 의심하지 않아서라고요. 무작정 높은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상품을 만나면 일단 의심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 잊지 마시길!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영상=정민수기자 minsoojeong@sedaily.com

김경미·정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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