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덜어주기 위해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일부 업체들이 건물주들에게 임대료 인하를 압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동체 정신으로 국난을 함께 극복하자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생계형 임대인에게조차 비자발적인 희생을 강요하면서 오히려 세입자와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업체인 CU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가맹점 피해가 커지자 본사 차원에서 가맹점이 입주해 있는 건물 주인에게 임대료 인하를 요청하는 통일된 공문 양식을 작성해 전국 가맹점에 보냈다. 가맹점들이 공문을 직접 건물주에게 우편으로 발송해 달라는 것이었다.
공문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급격한 매출하락과 극심한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참담한 심정”이라며 “현 점포의 임차료를 한시적으로 인하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어 “임차료 인하가 국가 재난상황 속에서 위기극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도 했다. 코로나19를 국가적 재난으로 보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공문에는 CU라는 로고만 찍혀 있을 뿐 보내는 사람은 가맹점주 명의로 돼 있다. 이렇다 보니 일부 가맹점주들은 “착한 건물주 운동에 편승해 생색은 CU 본사가 내고 정작 뒷감당은 가맹점주들이 하라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CU 본사가 아닌 가맹점주가 임대료 인하를 요청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건물주와 가맹점주 간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가맹점주는 “취지는 좋지만 형식이 잘못된 것 같다”고 지적하며 “차라리 본사와 가맹점주 간 수익배분율 조정이나 가맹비 인하 등의 현실적인 지원책이 더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CU 측은 이에 “(임대료 인하 요청 공문은) 점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양식을 만들어주고 절차를 안내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점포 임차계약자는 CU 본부가 아니라 개별 가맹점주이기 때문에 서면에 점주 명의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특히 가맹점주가 직접 공문을 건물주에 발송할지를 최종 판단하기 때문에 전국의 CU 가맹점이 입주해 있는 건물주에게 공문이 보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주차장 업계 1위인 하이파킹도 최근 일부 건물주들에게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논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파킹은 공문을 통해 “2개월 임대료 감면 또는 임대료 인상 및 전기요금 납부 철회”를 간곡히 요청했지만 건물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파킹 관계자는 “단기간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지 읍소하는 마음으로 공문을 보냈다”며 “하지만 건물주가 임대료 인하가 어렵다고 하면 우리도 따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운을 뗀 착한 임대주 운동이 자칫 건물주와 상가 임차인 간 갈등의 골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임대인은 “임대료를 깎아주는 게 건물주의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코로나19로 다들 힘든 상황에서 ‘악덕 건물주’ 프레임을 씌우고 편을 갈라 갈등을 조장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최인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통을 분담하자는 마음에 임대료를 인하해줄 수는 있지만 임대료를 깎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건물주’로 매도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약속을 어기는 일”이라며 “건물 임대료도 결국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인 만큼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기보다는 시장원리를 따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김현상·박민주·한민구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