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현정택의 세상보기] 정부가 키운 마스크 대란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긴급수급조치 직후 비축 안하고

공적 명목으로 유통시장만 교란

사람 몰리며 방역정책에도 역행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고 있는 점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보건복지부 차관까지 마스크 수급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정부가 이처럼 뼈 아프게 여기는 마스크 대란을 예방할 기회는 있었다.


마스크 제조업체인 웰킵스의 박종한 대표는 한 방송에서 1·2월 두 달간 6억∼7억 개의 마스크가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는 개인적인 조사 결과로 수치의 정확성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그중 일부만 국내에 남겨뒀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정부가 2월12일 물가안정법에 근거한 긴급수급조정조치를 발동해 마스크의 생산·수출·유통 신고를 의무화했는데 그때부터 바로 정부가 구매해 비축하기 시작했으면 지금과 같은 대란은 피할 수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뒤늦게 만들어 현재 시행 중인 마스크 대책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혼란을 더 키운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당·정·청 협의 결과로 만들어진 그 이름부터가 모순인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다.


의료기관이나 취약계층 등을 위한 공공 수요가 있으면 정부가 예산으로 사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러한 용도라면 공적 마스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정부의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의 근간은 공공 수요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판매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 교육이라는 공공 목적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마스크를 환수해 일반인에게 팔게 하고, 군대에서 써야 할 마스크를 민간에게 양보하도록 하는 일이 공적 마스크 판매라는 목적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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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공공유통망을 통해 절반을 착한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면 상업유통망의 가격도 따라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 착한 임대료와 비슷한 사고이며 이 정부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소득주도성장과 맥을 잇는 정책이다. 그러나 똑같은 물건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두 개의 유통망으로 떼 내느라 기존 채널을 무너뜨려 가뜩이나 공급이 모자란 시장을 더욱 교란했다. 당연히 가격이 낮은 ‘공적 판매처’에 사람이 몰리게 해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방역 정책에도 역행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대만식으로 신분을 확인해 1인당 사용량을 철저히 통제하거나 정부가 전량 행정단위를 통해 공급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전 국민에게 마스크를 공급하는 데 정부가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는 큰 의문이 있다.

제롬 애덤스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대중이 코로나19를 예방하는 데 마스크가 효과적이지 않다(not effective)고 했으며,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도 지역사회에서 마스크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마스크는 증상이 있거나 감염의심자를 돌보는 사람들에게만 권장한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국의 정책 초점도 의료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필요한 마스크·방호복 등을 확보하는 데 맞추고 있다.

정부는 3일 예비비를 통해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대구·경북 지원용 700만 개, 의료기관 종사자용 1,200만 개의 마스크를 구매하고 마스크 생산업체의 설비 개선을 위해 7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차제에 마스크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이 같은 예산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데 맞추고 공적 마스크 판매라는 억지스러운 대책은 거둬들여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울먹일 정도로 어려운 한국 경제 상황에서 기획재정부 직원 64명이 조를 짜서 마스크 현장 점검에 나가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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