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권병윤 "지자체와 협력해 도심 주행 확대, 자율車 안전성 높일 것"

[권병윤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자율차 실제 도로 운행 데이터 쌓아야 안전 사각지대 해소

사고 책임·손해배상 비율 산정 등 제도 마련 연구도 힘써

내년 '안전속도5030' 제도화…교통사고율 더 줄이겠다

<서경이만난사람>권병윤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오승현기자 2020.03.19



“자율주행차의 테스트 환경을 아무리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 도로 주행 경험을 늘려 각종 상황에 대처 가능한 데이터를 쌓는 것이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자율차의 실제 도로 주행 기회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권병윤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서울 서초구 교통안전공단 스마트워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자율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복안을 이같이 강조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자율주행차가 4차 산업혁명의 ‘총아’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운전자 없이 움직이는 차’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작은 오류에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 국내에서는 자율차가 실제 보행자와 차량이 다니는 도심 도로에서 주행을 한 사례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고 권 이사장은 전했다. /대담=서정명 경제부장 vicsjm@sedaily.com


권 이사장은 “자율차가 지금 내 옆에서 운행 중이라면 누구라도 불안하겠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자율차 기술은 시범 수준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자율차 스타트업 웨이모의 자율차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실제 도로 위를 달리며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시험을 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은 교통사고 예방사업부터 자동차 안전관리, 제작결함 조사까지 교통체계 전반의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특히 자율주행차는 권 이사장을 비롯해 교통안전공단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운전자가 탑승을 하지만 운전대에서 손을 뗀 채 개입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운행하는 레벨 4단계의 자율차가 국내에서 시험 단계에 이를 정도로 자율차 상용화 시대가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다. 권 이사장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직접 참가해 각국의 자율차 기술을 눈여겨보고 왔다. 그는 “지난해까지 자율차가 상용화를 목표로 연결성·공유·전자화 등에 중점을 뒀다면 올해는 자율차가 자동차의 개념을 넘어 이동수단으로서 정체성이 무너지고 생활공간의 의미로 확대되는 인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현재까지 자율차 안전성 확보를 위한 교통안전공단의 노력은 순항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은 2018년 말 경기도 화성에 32만㎡(11만평) 규모의 자율주행 실험도시인 ‘케이시티(K-City)’를 준공해 운영 중이다. K시티는 인공 눈과 비를 내리게 해 실제 기상 악화 상황을 재현하고 터널처럼 통신이 끊길 수 있는 음영 지역을 꾸며 자율차의 위기대응 능력을 다양하게 체크하고 있다. 또 데이터 분석과 차량 정비 공간 등을 마련한 혁신성장지원센터, 민간의 인공지능(AI) 기술개발 장려를 위한 공유데이터 활용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자율차의 안전은 기술로만 담보되지 않는다. 안전 기준과 관련 제도가 필수적인데 한국은 자율차의 안전 기준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월 세계 최초로 레벨 3단계 자율차의 안전 기준을 도입했다. 레벨 3은 운전자가 탑승한 채 고속도로 같이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환경에서만 차량이 자율주행을 하는 ‘부분 자율주행’ 단계다.

이번에 도입된 기준에는 부분 자율주행 시스템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먼저 착석 여부 등을 감지해 운전자가 운전이 가능할 때만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에게 ‘운전 전환’을 요구한다. 이때 10초 안에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자율차가 스스로 속도를 줄이거나 비상 경고 신호를 울린다. 차량 충돌이 임박할 때도 감속과 비상조향 등으로 대응하게 한다.

이에 따라 교통안전공단도 분주해졌다. 권 이사장은 “주행·고장, 정보보안, 제어권 전환 등 자율주행차의 3대 핵심 안전성을 연구하고 정부의 연구개발(R&D) 결과를 바탕으로 유엔(UN)의 자율차 국제기준 제정을 선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핸들과 액셀·브레이크 등 페달이 없는 셔틀버스의 실제 도로 시험을 위한 임시운행 허가제도를 개선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안전성 평가기술 개발과 완전 자율주행을 의미하는 ‘레벨 5’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전문 인력 충원이 중요해졌다. 권 이사장은 “자율차가 상용화하면 센서와 AI·로봇 등 탑재 기술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수반된다. 기술 인력은 계속해서 늘리고 있다”면서 “사고에 대한 책임, 제작사의 손해배상 비율 산정 등을 연구할 전문가 역시 직접 채용 또는 연계를 통해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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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이사장은 자율차가 가장 먼저 적용될 산업이 ‘차량 공유’라고 전망했다. 자율차가 상용화하면 운전면허가 없어도 누구나 손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이사장은 “통상 차량 렌트 시 차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운전자 수요도 높은 편”이라며 “렌터카와 기사를 동시에 대여하는 ‘타다’와 같은 모델이 시장에 나온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율차가 보편화하면 택시·버스 같은 대중교통의 판도가 크게 변화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교통안전공단은 자율차 같은 신기술뿐 아니라 기존 차량에 대한 안전 관리 업무에도 역량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3,349명으로 2018년보다 11.4% 감소한 것은 눈에 띄는 성과다. 권 이사장은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두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며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음주운전 단속·처벌 기준 강화, 2018년 9월부터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고속도로뿐 아니라 일반도로에서도 의무화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을 교통 선진국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감소 추세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자동차 1만대당 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명보다 여전히 높다. 특히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교통사고는 여전히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인구 10만명당 보행자 사망자 수는 2.5명에 달한다. 권 이사장은 “보행자를 비롯해 이륜차·화물차 등 도로 교통안전 취약 부문을 찾아내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국 도심 도로의 최고속도는 기존대로 시속 50㎞, 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30㎞로 낮아진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속도 제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이 개정될 속도 지침대로 시범지구를 운영한 결과 사고 건수는 종전의 15.8%, 부상자 수도 22.7% 줄었다.

권 이사장은 “지역별 교통 전문가와 교통안전공단이 협업해 해당 지역의 속도 하향과 시설 개선을 도울 것”이라며 “줄어든 속도에 맞게 신호체계를 조정하는 등 실무 작업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자체의 참여를 유도해 안심 도로 공모, 어린이 교통안전 시범도시 사업 등에 예산을 지원하고 매년 120개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안전을 무상으로 점검하는 사업 역시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는 렌터카와 택시·버스·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 역시 15% 이상 감소했다. 한 번 발생했다 하면 대형 사고로 직결되는 사업용 차량 사고가 줄어든 것은 고무적이다. 권 이사장은 “올해는 사업용 차량 교통사고 안전관리에 더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실시간으로 운전자의 위험운전 특성을 기록하는 운행기록 장치를 활용해 사업용 차량 운전자 교육, 위험운전자 관리 등 교통사고 예방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운수회사 및 운전자의 정보를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를 통해 화학약품 같은 위험물질을 운송하는 차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사고 발생 시 경찰서·소방서 등 관계기관과 신속한 협업에 나설 계획이다. 권 이사장은 “올해 준공 예정인 첨단 자동차 검사연구센터를 통해 자동차 검사 기술 개발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며 “튜닝카의 성능과 안전도를 시험하는 센터 역시 논의를 거쳐 설립 계획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권 이사장은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본다. 기존 차량이든, 자율차 같은 새로운 수단이든 교통 인프라와 이동 수단, 운영 체계와 법제가 동시에 잘 작동해야 교통 안전성을 궁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안전 시스템이란 ‘인간은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자동차와 도로·제도가 인간의 실수를 방지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도로 인프라, 운행 속도, 자동차, 운영 체계 등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선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맞게 된 권 이사장이 끝까지 챙기려고 하는 목표는 교통사고 감축과 자율차 상용화에 대한 지원이다. 그는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올해 감소 목표(2,867명)를 달성하기 위해 보행자와 화물차, 안전 사각지대를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안전대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또 자율차를 중심으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해 국내 자율주행 기술 연구개발이 선진국 수준 이상이 되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오승현기자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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