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주력산업과 관련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해 도미노 부도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신용경색을 겪고 있는 주력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정부에서 보증하고 한국은행이 이를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가 한은법을 개정해 한은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3일 민주당 정책통인 최운열 의원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제일 걱정되는 것은 우량기업들의 흑자도산”이라며 “유동성 위기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에 대해 산업은행 등 정부가 보증하거나 한은이 정부보증사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우량기업이 부도나면 어차피 재정이 투입되는데 이를 사전에 막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장기적으로 국회에서 한은법을 개정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정부와 당 대표에게 이러한 방안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달부터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는 37조원, 기업어음(CP)은 79조원 등 총 116조원에 달한다. 이중 상반기에 신용도가 낮은 것으로 취급되는 A등급 이하 회사채와 A2- 등급 이하 CP 물량만 43조원에 이른다. 시한폭탄에 불이 붙은 형국이다.
이처럼 사정이 급박한데도 당정청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대기업 피해 지원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추경의 경우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 회복 △취약계층 생활안정 △특별재난지역(대구·경북) 지원 등에 11조7,000억원의 편성안을 짰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정부의 코로나19 피해기업 정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맞춰져 대기업은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며 “일시적 신용경색에 빠진 대기업도 과감하게 지원해 금융부실과 대량실업 사태로 번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6조원가량의 채권담보부증권(P-CBO)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 중앙은행처럼 회사채와 CP를 직접 매입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채안펀드가 조성될 때 금융회사가 가진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간접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5조원 규모의 채안펀드 중 50%에 대해 RP 매입 방식으로 유동성을 지원했다.
학계와 재계에서는 현행 제도로도 한은이 직접 정부보증 회사채를 매입할 수 있다며 신속한 대응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은법 68조는 한은이 매입할 수 있는 자산의 대상을 국채, 정부보증채, 금통위가 정한 유가증권 등으로 적시하고 있다. 피해 대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와 CP를 신용보증기금·산은 등 정부에서 보증하면 충분히 한은이 자금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조만간 부도에 내몰리는 기업들이 쏟아져나올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며 “한은이 대기업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즉각 마련해야 하고 한은법도 국회에서 바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휘봉을 잡고 이러한 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감사원을 통해 자금집행 과정에서 공무원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정명 경제부장 vicsj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