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접수가 안 돼 하도 답답해서 직접 센터를 찾았는데 또 허탕을 쳤습니다.”
홀짝제로 소상공인 긴급자금 대출이 시작된 1일 오전6시.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인데도 50여명의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긴급자금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이다. 대출업무 과부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홀짝제에다 현장 예약 인원을 제한하자 새벽부터 줄을 선 것이다. 일부는 온라인 접수가 안 돼 직접 센터를 찾았다. 마스크 구매처럼 본인 출생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한 홀짝제로 접수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줄을 섰다가 허망하게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나마 이날 1주일 뒤 대출상담을 받을 수 있는 ‘예약대기표’를 손에 쥔 사람은 40명뿐. 다시 홀짝제에 맞춰 새벽 줄을 서야 하는 소상공인은 “또 줄을 서란 말이냐”며 화를 냈다. 이전처럼 소진공 센터를 빙빙 감던 긴 줄은 사라졌지만 대출까지는 여전히 어려웠고, 그만큼 급전이 필요한 소상공인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홀짝 뒤섞여 자정부터 대기줄 시작=서울중부센터의 경우 이날 첫 번호표를 받아 간 소상공인은 전날 자정부터 밤새 줄을 섰다. 서울 중구에서 제조업을 하는 이모씨는 “오전9시 센터 문이 열리기도 전에 왔는데 이미 접수가 끝났다고 하더라”면서 “긴급 대출이라는데 오늘 접수예약을 해도 실제 (대출금) 입금까지 몇 주가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혀를 찼다. 다행히 오늘 대기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7일 후에나 대출을 진행할 수 있다. 자금대출까지는 긴 시간이 남은 셈이다.
홀짝제 도입 첫날이라 혼선도 속출했다. 일부 센터에서는 새벽부터 줄을 선 소상공인에 대해 홀짝제에 상관없이 전부 상담예약을 잡아줬고 다른 센터에서는 대기줄에서 출생연도가 짝수인 사람은 돌려보내 ‘복불복’ 상황이 연출됐다. 동대문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일찍 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홀짝으로 나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라인 예약접수 또한 하늘의 별 따기다. 전날 인터넷 예약에 성공해 대출상담을 기다리던 임모씨는 “그나마 나이가 30대로 젊어 ‘광클릭’을 해서 간신히 접수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인터넷 접수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센터 직원으로부터 휴대폰으로 홈페이지 가입 방법부터 안내받던 70대 소상공인 최모씨는 “인터넷 접수는 엄두도 못낸다”고 토로했다.
◇“대기번호 없이 상담” 한산한 시중은행=이날부터 은행도 소상공인 대출을 위탁처리했지만 홍보가 부족했는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기업은행 성수동지점은 신용등급 1~3등급인 소상공인이 긴급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지만 입금이나 출금 같은 단순한 은행 업무만 이뤄지고 있었다. 다른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창구도 비교적 한산했다. 인근의 농협은행 창구도 1~2명의 고객만 보일 뿐이었다. 신한은행 남대문지점 관계자는 “대출 관련 전화문의가 평소보다 2배 늘었다”며 “주로 소상공인 대출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와 구비서류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신용등급 1~3등급의 고신용 소상공인들도 은행 이용이 쉽지 않았다. 은행이 부실을 우려해 대출을 꺼려와서다. 이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직접 고신용 소상공인들도 은행 고객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해 시중은행을 통한 소상공인 대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시중은행을 통한 정책대출 상품 개시 소식을 모르는 소상공인들이 많아 홍보가 더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로 매출 절벽에 몰린 소상공인들에게 자금이 바로바로 전달되도록 해야 하지만,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일부 소상공인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는 막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선지급 후심사’와 같은 주장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진공 업무량 폭증에 내부 직원도 ‘부글부글’=바깥의 긴 줄은 사라졌지만 소진공 내부의 업무에는 과부하가 걸렸다. 대출이 거절된 소상공인들이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위협하는 일도 잦아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있다. 소진공 노조는 ‘폭언을 삼가달라’는 호소문도 내걸었다. 소진공 내부에서는 업무량 폭증을 호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늘어난 업무를 빨리 처리하라는 윗선의 지시 때문에 매일 공짜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며 “업무 중 휴식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 전국 62개의 소진공 센터에는 600여명이 근무하는데 이들 인력으로는 630만명에 달하는 소상공인 긴급대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 2~3명뿐이던 직접 대출 업무 담당자도 긴급교육을 통해 늘렸지만 하루 10건 이상 처리는 무리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기본적인 절차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그렇지만 하루 처리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대 7,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긴급자금대출은 신보의 보증심사 등이 병목현상을 보이면서 급전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58조원을 중소기업·소상공인에 지원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돈이 잘 돌지 않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아직 시행 초기이고 기존 방식과 달라 현장 적응에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며 “온라인예약제와 접수홀짝제가 정착되면 현장 혼란도 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박호현·이지윤기자 now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