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1981년, 노트북 첫 선

오즈번 본사, 출시 2년만에 파산




1981년 4월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웨스트코스트 컴퓨터 박람회(WCPSF). 태동기를 맞이하던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서 당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 박람회에 혁신적인 제품이 등장했다. 오즈번 컴퓨터사가 출품한 ‘오즈번 1(Osborne 1)’의 진열대에 관람객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성능은 보통 수준. 64KB 메모리에 2개의 2.75인치 플로피디스크와 기본적인 입출력 장치, 외장형 보조 건전지를 달았을 뿐이다. 크기와 무게도 많이 나갔다. 가로 50㎝, 세로 36㎝, 폭 22㎝의 크기에 무게는 무려 10.7㎏.


일반 데스크톱과 덩치는 비슷하고 성능은 오히려 떨어지는 오즈번 1에 사람이 몰린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휴대성. 소형 짐가방처럼 여객기 좌석 밑에 적재할 수 있다는 휴대성이 부각돼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동일한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전문직들의 인기를 끌었다. 가격도 대당 1,795달러로 결코 싸지 않았으나 출시 8개월 만에 1만대가 넘게 팔렸다. ‘상업용으로 성공한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를 개발한 오즈번사도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창고에서 직원 2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이 3,000명을 거느린 기업으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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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출시 이듬해인 1982년 말께 매출 1억달러를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오즈번사는 얼마 뒤 파산을 맞았다. 창업주인 애덤 오즈번의 오판 탓이다. 경쟁사들의 추격 의지를 꺾는다며 몇 달 뒤에 내놓을 ‘오즈번 2’의 제원을 미리 발표하자마자 갑자기 매출이 뚝 끊어졌다. 고객들이 더 나은 제품이 출시되기를 기다리며 기존 제품을 외면하는 바람에 막대한 물량의 오즈번 1이 창고에 쌓이고 자금도 돌지 않아 1983년 파산하고 말았다. 신제품 출시 전에 성능을 미리 공개해 곤경을 자초하는 현상은 ‘오즈번 효과’라는 새로운 마케팅 용어까지 낳았다.

엄밀히 따지면 휴대용 컴퓨터의 시초는 오즈번 1이 아니다. 이미 1950년대 중후반에 이동 가능한 컴퓨터가 나왔으니까. 1981년 이전까지 나온 기종만 수십 개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 군용으로 트럭에 실어 이동한데다 가격도 수만~수백만 달러로 비쌌다. 사람이 손으로 운반할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인 오즈번은 비록 반짝하고 사라졌으나 긴 영향을 남겼다. 1985년 요즘의 노트북과 거의 비슷한 기종이 나온 이래 오늘날까지 경량화와 고급화 경쟁이 이어진다. 한때 태블릿PC에 밀려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노트북 컴퓨터는 스마트폰과 더불어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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