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색인문학] 400년 세월 견디며 '신령한 성황당' 지키다

■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 강원도 신림면 성황림과 음나무

강판권 계명대 교수· 사학

서낭신 모신 성스러운 공간 덕에

다양한 나무들 울창한 숲 이뤄

마치 동화나라 온듯 신비한 느낌

세월의 무게 이겨낸 당당함인듯

400살 음나무는 가시 없이 우뚝

강원도 치악산 성황림에 자리잡은 성황당.강원도 치악산 성황림에 자리잡은 성황당.



성황림은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질병·재해 등을 막아주는 ‘지킴이’의 전통문화일 뿐 아니라 자연생태를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의 ‘원성 성남리 성황림’은 우리나라 성황림 중에서도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처음 천연기념물을 지정하기 시작했던 지난 1962년에 제93호로 지정됐다. 성황림이 위치한 행정구역인 신림면(神林面)의 이름, 즉 ‘신령스러운 숲’도 성황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황림은 국립공원이자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의 서낭신을 모시는 곳이다.

성황림은 신이 깃들어 있는 신령스러운 숲이기 때문에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특히 서낭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래서 경건한 몸가짐을 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년 실시하는 성황제를 기다려야 하고 간혹 관리인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성남리 마을 입구에 위치한 성황림은 숲 사이로 계곡이 흐르고 있을 뿐 아니라 울창한 숲 덕분에 마치 동화 나라에 온 것처럼 신비롭다.

전나무·음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나무들로 빼곡한 성황림.전나무·음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나무들로 빼곡한 성황림.


성황림의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은 각시괴불나무·음나무·전나무·복자기·졸참나무·층층나무·피나무·가래나무·쪽동백나무·들메나무·박쥐나무·산초·보리수·광대싸리·복분자딸기·찔레·노박덩굴·으름덩굴 등이다. 성황림의 주인공은 숲이지만 서낭신을 모시는 집, 즉 당(堂)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성황림에는 돌로 만든 집인 돌무더기도 있지만 나무로 만든 집도 있다. 이곳 성황림에는 나무로 만든 집이 있다. 성남리 성황림이 지닌 가치는 단순히 성황신을 모시고 있는 숲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온대지역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나무들이 지금처럼 남아 있는 것은 숲을 신으로 모신 덕분이다. 성황림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고 각각 가치를 지니지만 그중에서도 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음나무와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가 단연 돋보인다. 두 종류의 나무는 성황당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음나무, 왼쪽에 전나무가 살고 있다. 방위는 성황당을 비롯한 신이나 조상을 모시는 건물이 있을 시 인간 중심이 아니라 신이나 조상을 중심으로 정한다. 따라서 음나무가 오른쪽에 있는 것은 이 나무가 서쪽을 뜻하고, 전나무가 왼쪽에 있는 것은 동쪽을 의미하는 푸른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남리 성황림의 음나무와 전나무를 이렇게 해석한 사례는 없다. 성황당에 나무를 심을 때 이러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다만 나무를 음양사상으로 인식한 인문학 전통을 적용하면 기록 여부와 관계없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것이 인문학의 역할이다.

성황당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음나무.성황당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음나무.


성황당은 음나무와 전나무가 워낙 웅장하기 때문에 마치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 같다. 나는 두 종류의 나무 중에서도 음나무를 보고 감동과 감탄을 연발했다. 전나무는 이곳 외에도 월정사와 내소사를 비롯해 웅장한 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음나무는 지금까지 만난 음나무의 모습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이곳 성황림에 음나무를 심은 것은 가시 때문이다. 음나무는 줄기와 가지에 가시가 많아 사람이나 동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음나무를 ‘가시 달린 오동나무를 의미하는 ‘자동(刺桐)’이라 부른다. 음나무의 이 같은 특징 때문에 문 앞에 가시가 달린 음나무 가지를 매어놓는 풍속이 생겼다. 음나무처럼 가시가 많은 나무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의 기능을 갖고 있다. 조선 후기 강진규의 ‘역암집’중 ‘유엄목문’은 음나무의 벽사를 논한 글이다.


성황림의 음나무는 숲을 지키는 주인공이지만 줄기와 가지에 가시가 없다. 음나무는 나이가 많이 들면 스스로 가시를 없애버린다. 가시 없이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음나무의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400살 정도의 성황림 음나무의 줄기와 가지에는 가시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매끈하다. 이곳 음나무의 줄기를 보면 어린 음나무의 모습과 전혀 달라서 다른 나무인 줄 착각할 정도다. 찬찬히 바라보면 관록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음나무의 모습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당당하게 극복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성황당 앞에는 단풍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복자기가 여러 그루 살고 있다. 이곳 복자기는 나이도 많아 아주 멋스럽다. 복자기는 단풍나무 중에서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가을날 복자기 단풍 너머 성황당을 감상하면 더없이 행복하다. 복자기를 뒤로하고 성황림 숲길을 걸어가면 자연을 병적으로 즐기는 ‘천석(泉石)’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찾으면 곤란하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찾으면 소란스러워서 신령스러운 숲을 경험할 수 없다. 숲길을 걷다가 소나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소나무의 줄기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면 황홀한 경지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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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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