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성원·게이힐·후커힐, 유엔빌리지·외국인아파트(현 나인원한남).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원과 한남동은 다양한 하위문화와 외래문화 등이 뒤섞여 서울에서 가장 문화적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다.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래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태원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우선 용산구청 홈페이지에는 조선 시대에 이태원이라는 역원(숙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1986년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한국지명총람’에도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 배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배나무 이(梨) 자와 역원의 원이 합쳐져 이태원(梨泰院)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귀화해 정착한 지역으로 ‘이타인(異他人)’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일찍부터 이방인들의 문화가 자리 잡은 지역이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이 덕분에 지금도 이태원과 한남동에는 각국 대사관들이 밀집돼 있다.
이태원과 한남동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방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00여년 전만 해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으나 1930년대 당시 택지 조성사업을 통해 남산 밑 양지바른 곳에 일본인들이 거주할 만한 고급 주거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적산가옥이 들어섰다. 이후 일본인이 철수하고 정부가 불하한 적산가옥을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사들였다. 현재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에 대기업 오너를 비롯해 부유층들의 부촌(富村)이 형성된 이유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한남동 자택의 올해 공시가격은 277억1,000만원으로 5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비싼 표준 단독주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오너들이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실제 한남동은 일찍이 한국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의 시초로 여겨지는 유엔빌리지가 형성되고 옛 단국대 부지에 들어선 한남더힐, 그리고 외국인아파트를 재개발한 나인원한남이 자리를 잡는 등 시간이 갈수록 부촌의 이미지가 확고해졌다.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 이처럼 고급 주거시설이 들어선 것은 전형적임 배산임수 지형으로 풍수지리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김찬중 더시스템랩 대표는 “한남동은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클래스’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며 “평창동·성북동·방배동 등 서울에 부촌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한남동은 그보다 더 상위계층이 사는 동네라는 인식을 준다”고 말했다. 이는 부동산 가격에도 반영돼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성북동과 평창동의 주거시설 토지가격은 3.3㎡당 2,000만원 전후로 형성돼 있는 반면 한남동은 7,000만~8,000만원 수준으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태원의 지역성을 설명하는 데는 ‘미군’이라는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전쟁 이후 1953년부터 인근 용산에 미 8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이태원에 미군을 위한 술집과 클럽들이 대거 들어서는 등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 최근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촬영 장소로 미 8군 사령부가 이전한 평택이 검토되기도 했는데 이는 평택도 이태원과 마찬가지로 미군의 영향을 받아 유사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미군이 이태원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이태원에는 서울에서 유일한 이슬람 거리(우산단로 1길)와 아프리카 거리(보광로 60길) 등 다양한 외래문화가 혼재돼 있다. 이태원소방서 뒤편에는 1990년대부터 게이바와 트랜스젠더 클럽들이 들어서면서 게이힐이 형성되는 등 문화적 포용성이 높은 동네다. 2000년대 초반 커밍아웃을 한 배우 홍석천씨는 “처음에는 외국에 나가서 살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태원에 사는 외국 친구들이 응원도 해주고 용기를 줘서 남게 됐다. 나한테는 이태원이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미군을 비롯해 다양한 외래문화가 뒤섞여 있어 위험한 동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다.
‘한국 속의 이국’으로 불렸던 이태원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모조품을 비롯해 싸고 질 좋은 의류를 살 수 있는 지역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들르는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까지가 바로 대표적인 쇼핑 거리다. 다만 지금은 군데군데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텅 빈 가게가 쉽게 눈에 들어와 세월이 흐른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이태원이 그저 외국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울 속의 이색 거리라는 이미지를 넘어 서울에서도 가장 ‘핫’한 동네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이후다. 이태원을 대표하는 해밀턴호텔 뒤편 세계음식거리는 한때 다세대 주택가였는데 1층에는 주로 세탁소나 삼겹살집·쌈밥집 등 어느 동네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홍씨는 “2000년대 초반 이태원에 처음으로 가게를 열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이 변했다”며 “20년 전과 15년 전, 10년 전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음식거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불과 10년이 채 안 됐다. 용산구는 해밀턴호텔 뒤편으로 브라질·태국·프랑스·그리스·불가리아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이 생겨나면서 2012년 말에 세계음식거리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안 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포차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2010년부터 이태원이 주목을 받으면서 임대료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 글램·프로스트·파운틴 등과 같은 클럽을 비롯해 ‘힙’한 가게들이 폭발적으로 들어섰고 2015~2017년 사이 정점을 찍었다. 홍씨는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만 해도 30평대 기준으로 월 임대료가 250만~300만원 정도였다”며 “2010년께는 300만~400만원 정도로 올랐고 지금은 700만원에서 90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임대료 부담에 홍씨도 한때 7개까지 운영하던 가게를 접고 지금은 마이첼시 하나만 운영하고 있다.
이태원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흥망성쇠를 경험한 곳은 경리단길이다. 2015년 전후로 주목받기 시작한 경리단길은 불과 5년이 안 돼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너무 갑자기 임대료가 오른데다 다른 이태원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차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시기별로 부침은 있지만 이태원과 한남동은 오랜 시간 여러 문화가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이면서 서울에서 가장 문화적 색깔이 다양한 지역이 됐다. 공간적으로 살펴보면 이태원과 한남동은 해밀턴호텔과 제일기획 본사를 경계로 크게 세 권역으로 나뉜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해밀턴호텔 사이에는 주로 판매점들이 들어서 있으며 해밀턴호텔에서 제일기획 본사 사이에는 식당가, 그리고 제일기획 본사에서 한강진역 사이에는 대기업들의 안테나숍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거공간도 마찬가지다. 한편에는 부촌이 형성돼 있지만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을 잃은 이들이 모여들면서 달동네가 형성되기도 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이태원과 한남동의 주거지역은 일제 강점기 택지 조성사업을 통해 양지바른 땅에 반듯하게 조성된 고급 주거지와 도시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무질서하게 형성된 달동네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남동과 이태원에 판자촌부터 부촌까지 다양한 주거지가 형성된 것은 지형적인 영향도 컸다. 경사가 아주 급한 지역에는 고급 주거지가 들어서기 힘들어 서민 주거지역이 들어섰다. 또한 서울에서 가장 넓은 왕복 12차선의 한남대로와 한남동에서 이태원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언덕도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를 물리적으로 구분 짓는 경계다.
그간 많은 변화를 겪으며 숨 가쁘게 달려온 이태원과 한남동 앞에는 또 다른 미래가 놓여 있다. 미군이 떠난 자리에 들어서는 총 303만㎡ 규모의 최초의 국가공원 ‘용산공원’은 이태원과 한남동의 모습을 또 한 번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외래문화가 뒤섞인 ‘멜팅 포트(melting pot)’와 부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이태원과 한남동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