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골프장은 물론 연습장까지 싹 다 문을 닫았어요. 얼른 연습용 그물을 구해 집에서 훈련해야 해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신인상 유력 후보인 재미동포 노예림(19·하나금융그룹)은 2주 전 집이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콩코드를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에 자리를 잡았다. 캘리포니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확산하면서 도저히 훈련을 이어갈 여건이 안 되자 친구와 가족이 사는 하와이로 부모와 함께 약 4,000㎞를 날아 ‘코로나19 피난’을 간 것이다. 그나마 며칠 전에는 하와이의 골프장과 연습장도 모두 폐쇄돼 난처한 상황이 됐다.
7일 전화로 만난 노예림은 “얼마 전까지도 아침에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는 연습장에서 샷과 퍼트 연습을 하거나 가끔 라운드를 나가 시즌 재개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제 다 못 하게 돼버렸다”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바이러스 확산을 철저히 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마당에 그물을 설치하고 연습하는 골퍼들이 많던데 저도 빨리 구해야겠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와이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꼽히지만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고 다중이용시설들은 속속 영업을 중단하는 등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강도 높게 대응하고 있다.
노예림은 투어와 팬·미디어의 관심을 몰고 다니는 차세대 스타다. 지난해 9월 LPGA 투어 비회원 신분으로 월요예선을 거쳐 출전한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깜짝 준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10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공동 12위에 올랐고 11월에는 LPGA 수능 격인 Q시리즈를 3위로 통과해 2020시즌 풀시드를 따냈다. 데뷔 시즌 3개 대회에서 모두 컷 통과에 성공하며 연착륙했으나 코로나19로 시즌이 2월 중순에 멈춰버렸다. 노예림은 “다음 일정인 애리조나 대회(볼빅 파운더스컵)를 특별히 ‘빡세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낌이 정말 좋았고 자신감이 있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회가 줄줄이 연기돼 많이 당황스럽고 아쉬웠다”고 돌아봤다. 지금은 평소보다 더 훈련량을 늘려 집안과 집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 LPGA 투어 측이 매주 선수들에게 보내는 e메일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활동이 제한돼 지루할 법도 하지만 노예림은 “새로운 취미가 생겨서 지루할 틈이 없다”고 했다. 그는 “김치찌개나 조림 종류 같은 한식 요리를 만드는 데 푹 빠져 있다”며 “한국어가 다시 서툴러져서 걱정이었는데 한국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보면서 다시 공부할 시간도 생겼다”고 웃었다.
미국 방송에서 한국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반가운 일 중 하나다. “뉴스를 보면 거의 매일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대응이 빨랐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으로요. 대회에 못 나가는데도 항상 응원해주시는 한국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당연히 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노예림은 “우승자로 TV에 나오는 장면을 매 순간 상상한다. 신인왕 목표를 향해 다시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