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통해 제가 보고 싶은 건 장엄한 산도 거대한 바다도 어여쁜 당신 얼굴도 아닌,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중략) 속이 편치 않을 때는 언제라도 나무를 봅니다. 나무바라기처럼, 모가지를 틀어 열렬히 보죠. 고요히 한 곳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시끄러운 마음이 진정되거든요. 그쪽을 아무리 바라봐도 나무는 이쪽을 보지 않기 때문일까요. 제 눈길을 받아치지 않고, 다만 침착하게 서 있는 존재. 나무는 스스로에게만 열중하는 존재니까요. (중략) 봄이에요. 사월이고요. 단 하루도 슬프게 지내지 않을 거예요. 나무를 실컷 보겠습니다. (박연준, ‘모월모일’, 2020년 문학동네 펴냄)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해야 할 이때, 애꿎은 꽃나무들이 사람 대신 욕을 먹는다. 아무리 집에 머물자고 해도 ‘그래도 봄인데’ ‘난 너무 힘들었으니까’ 하며 은근슬쩍 꽃놀이 나오는 개인이 인파를 이뤘다는 뉴스에 씁쓸해진다. 저놈의 꽃이 뭐길래, 폭우라도 와서 싹 쓸어냈으면 좋겠다고, 어떤 사람은 귀 막은 인간들이 아니라 꽃과 봄에 화를 낸다.
올봄 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되 나무는 가까이한다. 박연준 시인의 에세이 ‘모월모일’은 어느 평범한 날에 읽어도 가슴이 환해지지만 특히 ‘하루치 봄’이라는 주제로 묶인 봄글들은 올해 발 묶인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꼭 천지에 흐드러지게 피어 와글거려야 꽃놀이인가. 내 방 작은 창 너머에, 또 인근 가게 가는 길에 드문드문 떨어져 선 가로수가 간신히 매단 꽃, 무수히 가지치기 당해 연약한 팔목에 기어이 피어난 꽃을 나는 혼자 바라본다. 가까운 나무들을 관찰하다 보니 꽃의 얼굴과 표정까지 보여 더 애틋하다. 올봄은 꽃놀이 가지 말자. 가까이 있는 침착하고 고요한 꽃나무랑 일대일로 놀아보자.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