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지식인들이 잇따라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비판 대열에 가세하는 것은 비례 위성정당 창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등에서 드러난 정부 여당의 반개혁적인 행태에 실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정치적 비전을 상실한 채 집권에만 매달리고 있는 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이나 다름없는” 보수정당이 됐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비판론자들에게 재갈을 물리자 지식인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새로운 진보’는 민주당 혹은 기존의 정당체제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경제는 9일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꼽히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과의 특별인터뷰를 통해 △최근 청와대·민주당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낸 이유 △현재 민주당의 정치적 스펙트럼 △비례 위성정당 창당 등에 대한 논란 △친문 팬덤 현상 △진보세력의 재구성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민주당에 실망한 가장 큰 원인으로 ‘개혁성 상실’을 꼽았다.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과제와 비전을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통합당이 차지했던 자리가 부러웠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입법을 반대했던 인터넷전문은행법, 데이터 3법 등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과 관련해 “통합당과 하등 다를 바 없다”며 “정치적 색채와 지향점의 차이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 역시 “민주당의 가장 가까운 계보는 김대중 정권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거기서 그쳤다”며 “통일에 대해서만큼은 민족주의 입장에서 전향적 모습을 보이는 보수 민족주의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은 개혁정당이자 진보정당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보수세력이 됐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평가는 최근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해 공직선거법 개정 취지를 무너뜨리는 등 반개혁적 모습을 보인 데서 비롯된다. 민주당이 비례대표 전용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데 대해 강 교수는 “선거법 개정은 승자독식을 바꿀 좋은 기회였지만 완전히 만신창이가 돼버렸다”고 되짚었고 김 전 위원장은 “거대양당의 의석 독점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꼼수정당으로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집권의 정당성을 얻고 국민의 지지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기는 어렵게 됐다. 정치권력은 그 획득 과정에 정당성이 담보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임 교수의 평가다.
특히 이들은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더라도 ‘친문 팬덤’이 정치를 퇴행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전 위원장은 ‘친조국’ 세력을 두고 “이들이 있는 한 진보의 미래는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조국 사태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성숙함은 상당히 퇴행했다”며 “정당들이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궤멸된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조 전 장관의 입시비리를 두고 침묵한 여당 의원들, 오히려 조 전 장관을 옹호한 지지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이기면 된다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대처하니 허물이나 문제는 감춰야 할 문제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친문 세력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위협당한 사례를 들며 “위험한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에게는 “참여연대도 자발적으로 자기검열을 했다(김 전 위원장)” “나도 벌벌 떤다(강 교수)” “살이 살짝 떨린다(임 교수·지난 2월)”는 공통의 경험이 있었다. 임 교수는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가정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피억압자로서 기억공동체가 된 친문 세력은 승리를 통해 더 강화된 집합기억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의 요람이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이 아닌 진보’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이들은 제언한다. 김 전 위원장은 “100명, 안 되면 10명·5명이라도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이 조금씩은 있다”고 했고 임 교수는 “다른 방식의 정치결사체, 다른 모습의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 역시 “정치인이 되는 순간 나와 내 정당이 당선되는 게 중요해진다. 시민사회가 요구하지 않으면 정치권 스스로 안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