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감면이 총선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올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주택 소유자 의견접수(이의신청)가 ‘역대급’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여건이 악화한 가운데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자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폭증한 것이다. 서울 강남권 등 고가 지역 및 단지에서 민원이 빗발쳤다.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8일까지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의견청취 기간에 공시가격을 조정해달라는 의견이 3만 5,000여건이나 접수됐다. 이는 온라인 접수 건수로 우편이나 팩스로 접수된 의견서까지 취합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의견접수 건수는 지난해(2만8,735건)와 비교하면 6,000건 이상이나 늘어난 것이며 지난 2007년(5만6,355건) 이후 13년 만에 최대 규모다. 의견접수는 2018년 1,290건에 불과했는데 지난해부터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높아지면서 2년 연속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접수된 의견 중 대다수는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니 인하해달라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고가아파트를 중심으로 매매가가 하락하면서 공시가 인상에 따른 반발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토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14.75% 올라 2019년(14.01% 상승)에 이어 2년간 폭등했다. 특히 강남구(25.57%), 서초구(22.57%), 송파구(18.45%), 양천구(18.36%) 등 서울 주요지역이 20% 안팎의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일부 고가아파트는 공시가격이 시세의 80%에 달할 정도로 가격이 올라 ‘세금폭탄’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형평 안 맞고 일부 지역만 급등 … 집주인들 부글>
이렇다 보니 집단 이의신청도 급증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개포동 일대 아파트는 단체로 공시가격 하향 요청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은마아파트를 비롯해 미도·쌍용·래미안대치팰리스 등 최소 16곳에서 이의신청을 한 것이다.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99㎡의 경우 올해 공시가격이 40%가량 급등했다. 이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가 지난해보다 40%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민들이 대거 반발한 것이다.
서울 양천·마포·용산·성동구 등 주요 지역에서도 공시가격 인상에 대한 반대의견이 다수 접수됐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39㎡의 공시가격은 지난해 8억6,400만원에서 올해 10억8,400만원까지 올랐다. 공시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1주택자 기준 보유세도 기존 232만원 수준에서 330만원까지 크게 올랐다. 종합부동산세 적용 대상까지 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대다수도 공시가격이 20% 이상 올랐다. 목동 5단지 전용 95.06㎡는 지난해 공시가격이 10억1,600만원이었는데 올해는 12억6,200만원까지 상승했다. 1년 만에 공시가격이 24%나 급등한 것이다. 이 단지의 한 주민은 “오랜 기간 거주한 주민들 사이에서 세금폭탄을 맞았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의견청취 기간에 공시가격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낸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도권과 지방에서도 올해 공시가격 급등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거셌다. 경기도 의왕의 한 신축아파트에서는 입주 예정자 카페를 중심으로 공시가격 이의신청을 독려하는 움직임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입주한 이 아파트는 전용 84㎡ 기준 공시가격이 7억원 수준으로 책정됐는데 주변 시세에 비해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이 상당수였다. 광명 등 수도권 신축단지가 들어선 곳도 입주자 카페 등을 중심으로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집단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공시가가 급등한 대전 지역도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은 올해 공시가격이 평균 14.06% 올라 서울 못지않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대전과 서울에서 아파트를 함께 보유한 한 주택 소유주는 “서울 아파트는 시세가 3억원가량 올랐는데 공시가격이 2,000만원 상승했고 대전 아파트는 시세가 2억원 올랐는데 공시가격이 1억2,000만원 상승했다”며 “공시가격의 형평성이 없고 일부 지역만 급등해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역대급’ 의견접수건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감소 등 가계의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데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 산정과 관련해 시세 구간별로 분리해 현실화율을 적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9억원 미만 아파트는 현실화율을 68% 수준에 맞추고 9억~15억원 아파트는 70%, 15억~30억원 아파트는 75%, 30억원 이상 아파트는 80%까지 도달하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단지는 현실화율이 80%를 넘어설 정도로 가격이 급등했다. 최근 아파트 값이 하락하면서 공시가와 시세가 근접한 사례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아파트 공시가격이 과거에는 물가상승률 수준의 소폭 인상이어서 이의신청 건수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현실화율이 급격히 높아졌다”며 “코로나19 확산 등 경제 여건이 안 좋아지면서 세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주택 소유주의 이의신청이 올해 폭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토부가 접수된 의견을 고려해 공시가격을 낮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9년의 경우 접수된 의견 2만8,735건 가운데 21.5%인 6,183건만 조정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공시가 반발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는 의견청취가 끝나면 이달 29일 공시가격 결정 공시를 내고 다음달 29일까지 다시 이의신청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