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을 올려줄 교통 공약에는 동지도 당도 없었다. 오직 지역뿐이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공공기관 이전 공약이 대표적이다. 인접지역 같은 당 후보의 공약은 고려하지 않고 ‘내 지역구 먼저’를 외쳤다. 급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부 계획에도 어긋나게 자신의 지역구에 GTX를 정차시키겠다고 공약을 남발했고,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공공기관 2차 이전을 두고서도 자신의 지역구에 유치하겠다며 공수표를 날렸다. 사법개혁, 재정 건전성 등을 놓고 여야가 격돌하는 상황에서도 여야 모두 국토교통위원회에 가고 싶다는 희망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GTX 누더기 될 판=경기도와 인천의 총선은 한마디로 ‘GTX’ 총선이다. 아직 정부 연구용역이 끝나지 않아 지역과 예산 등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여야 후보 모두 간편하게 GTX 정차역 유치를 공약에 담았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 서구다. 서갑의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학재 미래통합당 후보는 GTX-D 노선에 청라국제도시를 포함시키겠다고 했고, 서을의 신동근 민주당 후보와 박종진 통합당 후보는 검단신도시를 관통시키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청라와 검단을 동시에 거쳐 강남을 잇는 GTX가 과연 ‘급행’이 맞느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GTX-C 노선도 마찬가지다. 안양동안갑에 출마한 민병덕 민주당 후보와 임호영 통합당 후보는 모두 ‘GTX-C 노선 인덕원역 정차’를, 과천·의왕의 이소영 민주당 후보와 신계용 통합당 후보는 의왕역 정차를 추가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정부의 계획은 GTX-C 노선이 정부과천청사역에 정차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과천청사와 멀지 않은 인덕원과 의왕에 각각 정차를 추진하겠다는 무리한 공약인 셈이다.
◇지방은 공공기관 이전에 사활=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광주를 찾아 ‘방사광가속기’를 전남에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은 오후에 돌연 정정됐다. 민주당은 정정공지를 통해 “충청북도와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겠다는 발언이 생략된 것”이라고 밝혔다. 방사선과속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만 1조원에 달한다. 전남과 충북·강원 등이 유치경쟁 중이다. 지역주민들이 좋아할 만한 공공기관 이전을 누구나 검토도 없이 공약하다 보니 생긴 꼴불견이다.
이처럼 충청과 강원 등 지방에서는 혁신도시 지정 및 공공기관 유치 공약이 가장 ‘핫’하다. 김학민 민주당 홍성·예산 후보는 내포신도시에만 공공기관 20개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어느 혁신도시에도 공공기관이 20개나 들어간 곳은 없다. 이 지역의 홍문표 통합당 후보도 “수도권 소재 120여개의 공공기관 중 규모가 크고 지역에 적합한 기관을 최대한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공공기관 이전 가능성이 높은 홍성·예산과 인접한 지역의 후보들 역시 너도나도 공공기관 유치를 내걸었다. 공주·부여·청양에 출마한 박수현 민주당 후보, 정진석 통합당 후보 역시 공공기관 유치를 약속했고 논산·계룡·금산에 출마한 김종민 민주당 후보와 박우석 통합당 후보도 각각 국방 관련 공공기관 유치 등을 공약했다.
◇너도나도 국토위 희망=GTX 정차역과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집값을 올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차기 국회에서 국토위를 희망하는 후보자들의 비중도 덩달아 높았다. 지역구 후보자로부터 희망 상임위원회를 조사(복수응답 포함)한 한국매니페스토운동본부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 201명 중 99명(19.41%)이 국토위를 선택했고 통합당은 후보 128명 중 70명(22.51%)이 국토위를 희망 상임위로 선택했다. 20개의 상임위가 있는데 5명 중 1명꼴로 국토위를 선택한 셈이다. 국토위는 인기 상임위 중 하나로 당 중진급 의원들이 대거 포진하고 ‘초선’은 진입이 어렵다.
입법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광역철도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수도권광역급행철도건설기본법, 남북고속철도연결법, 도시철도법 등을 재개정하겠다고 대답한 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념이나 철학 등의 구분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며 “해당 지역의 집값을 올릴 만한 호재를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후보자의 능력이 되면서 국토위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