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을 벌어도 한 달 월세가 안 나와요. 임대료라도 깎아주면 좋으련만 ‘착한 임대인 운동’은 딴 세상 얘기 같네요.”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신분당선에서 만난 휴대폰소품 매장 주인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요즘 매일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토로했다. 월 2,500만원에 달하던 가게 매출은 코로나19 이후 최근 두 달 연속 1,000만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A씨는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매출의 30% 정도인데 월 임대료는 600만원에 이른다”며 “가게 문을 열수록 계속 늘어나는 적자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정작 아무런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사각지대에 놓인 상인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임대료 부담에 허덕이는 상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깎아주는 사업자들에 세제혜택을 지원키로 했지만 이마저도 적자 사업자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정부와 민간사업자 모두 임차인 지원책 마련에 소극적인 사이 영세 소상공인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활성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지하철상가의 임대료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철도공사는 임차인에게 수수료나 임대료의 20%를 8월까지 감면해주기로 했고, 서울교통공사도 7월까지 임대료의 50%를 인하하기로 했다. 지하철 공기업들이 잇따라 임대료 인하에 나서는 것과 달리 신분당선처럼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민간사업자도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하에 동참해주면 다행이지만 신분당선 운영사는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처지라 난감한 입장이다.
물론 민간사업자의 경우 지난 2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 감면 혜택을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올 상반기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한 사업자에게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법인세에서 감면해준다고 밝혔다. 이에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민자사업자인 메트로9은 최근 상가 임대료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반면 신분당선 개통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면치 못한 운영사는 법인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 추가 세제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임대료 인하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인들이 늘자 신분당선 운영사는 지난달 말 국토부에 임대료 인하 지원방안을 요청했다. 운영사 측은 “적자여도 세금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공공노선과 달리 민자노선은 적자가 쌓이면 파산할 수밖에 없는 만큼 쉽게 임대료 인하를 결정하기 어렵다”며 “국토부에 고통분담 방안을 문의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국토부도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자노선을 지원하면 다른 업종 상인들의 형평성 문제가 일 수 있다”며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민간사업자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소상공인들은 더 이상 졸라맬 허리띠도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신분당선 상가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최근 5년간 같이 일해온 직원을 해고했고, 식료품업체를 운영 중인 C씨는 폐업까지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