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할 국물 맛도 쫄깃한 면발의 식감도 없이 툭툭 끊어지는 평양냉면의 맛은 아는 사람만 안다. 첫맛에 환호하는 이는 드물다. 오래도록 맛보고 천천히 음미해 비로소 느끼는 맛이다. 예술을 음식에 빗대는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겠으나, 화가 샌정(58·사진)의 작품들이 그런 느낌이다. 뿌연 화면 위에 이렇다 할 형태 없는 붓질, 약간의 색들이 부유할 뿐이다. 희미하고 명확하지 않은 것일수록 더 들여다보게 한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슴슴한 음식을 곱씹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 뒤셀도르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샌정의 대규모 개인전 ‘베리 아트(Very Art)’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OCI미술관에서 5월16일까지 열린다. 3개층 전시실을 총 38점의 근작들이 채웠다.
냉면 국물처럼 희멀건 화면에는 붓질 오간 흔적이 난무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길 없고 몇 가닥의 색만 남았다. 오래도록 ‘회화의 본질’을 탐색해 온 화가의 최근작은 몇 년 전부터 이 같은 반추상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뿌옇다고 불리는 ‘대기감’은 일부러 조장한 느낌이고 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이라며 “모호한 형상과 구체적 형상, 부유하는 것과 단단한 것이 마치 막연한 하늘 위에 뜬 별처럼 평면 위에서 정신적 깊이감을 조성하게 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샌정의 회화는 그린 그림이 아니라 지운 그림이다. 휘황찬란한 그림을 그린 후 지우개나 흰색으로 지웠다는 뜻은 아니다. 사물을 재현하는 대신 상징으로, 스토리텔링은 알레고리(allegory·우의)로 돌려놓는다. 소설이나 시나리오가 아닌 시(詩)를 쓴 것이요, 그 시어의 본질을 향해 압축했다.
“르네상스의 화가 우첼로(1396~1475), 티치아노(1488~1576)를 좋아해 종종 미술관을 찾아가 거장들의 작품을 봅니다. 경외심을 갖게 하는 대자연, 대가들의 걸작이 이미 많은 것을 보여준 상황에서 내 작업이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 작품 하나하나를 한계까지 끌고 가는 중입니다. ‘데미안’의 알처럼 경계는 깨고 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긍정적인 의미에서 ‘설레는 한계’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물감이 쌓이고 갈라지는 물성과 지우고 그린 붓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회화의 본질은 ‘빛과의 관계’라 상상하게 만드는 색선(色線)은 직관적으로 배치된 것들이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이름 붙인 물감 색이름도 탐탁지 않은 작가는 “색이 갖는 상징성이나 선입견은 배제된 상태”라며 “따뜻하고 차가운 색의 정서적 온도가 이루는 균형감을 믿으며 각각의 색은 당위성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 놓인다”고 소개했다. 화면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는 원동력이 됐다.
‘회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구호 같았던 시절,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동료들과 소규모 예술운동도 펼쳤다. 샌정은 이불·최정화·고낙범 등이 함께한 ‘뮤지엄’의 멤버였다. 그러다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뒤셀도르프에 눌러앉았다. “하인리히 하이네와 슈만을 낳은 곳, 폴 클레가 작업하고 백남준 선생이 교수 생활을 한 문화적 토양이 풍요로운” 그곳에서 그는 먼 곳에서의 향수, 동양회화의 정신성을 응축했고 숙성시켰다. 유럽 안에서 발효된 그의 그림은 ‘낭만주의를 재해석한 추상적 노스탤지어’라 불린다.
회화의 미래를 묻자 그는 “인간 표현의 첫 흔적인 원시시대 암각화는 언어보다 앞선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것”이라며 “회화는 숙명처럼 그 세계를 열어 보이는 필연성이 있기에 세계의 끝에서 새롭게 열리는 미래, 시각적으로 차가워지는 세계가 올수록 회화의 힘은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때때로 우리는 그림을 문자로, 혹은 이야기로 읽곤 한다. 회화는 그림 그 자체라는 것을 망각한 채 무엇을 그렸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찾으려 애쓰곤 한다. 쨍하게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대신 안개를 헤치고 어둠에 익숙해지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을 찾아보자. 군더더기 뺀 샌정의 그림에서 느슨함과 희미함 속에 숨겨둔 확고한 긴장감을 발견하게 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foru8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