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확정 전에 덜컥 발표...스텝 꼬인 금융지원

스타트업 低利 자금 등 쏟아내면서

부담 떠안는 금융권과 조율 미흡

리스크 뒷전·금융현장 혼선만 가중




정부와 청와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대규모 금융지원 방안을 쏟아냈지만 정작 소요 재원의 상당 부분과 리스크를 부담하는 금융권과의 세밀한 조율 없이 발표부터 내놓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금융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지원 주체인 금융사가 정부 발표를 보고 내용을 알게 되는 사례가 빈번한가 하면 상세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 발표만 보고 금융기관을 찾았다가 실망하는 수요자들도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신속하고 폭넓은 금융지원을 강조하면서 금융기관의 기본 철칙인 리스크 관리는 뒷전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스타트업·벤처기업 지원 방안’을 보고하며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민간은행과 협력해 정부 지원사업 참여 경험이 있는 유망 스타트업에 2,000억원 규모의 저금리 특별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자료에는 기업당 2억원 한도로 최저 1.87%의 금리까지 적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됐지만 전체 규모와 대출 한도, 상세 금리 등은 해당 은행이 세부 조율 중이어서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단계에서 정부 발표부터 나오자 은행도 서둘러 마무리에 나섰다. 해당 은행은 이번주 내로 상세방안을 정해 공문을 배포할 예정이다.

정부는 앞서 영세 소상공인 이차보전 대출, 개인채무자 원금상환 유예 등 민간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지원책을 내놓으면서도 세밀한 사전협의 없이 발표부터 서둘러 혼란을 키웠다는 논란을 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선(先) 발표, 후(後) 협의’가 되풀이되는 게 문제”라며 “금융사도 잘 모르는 대책에 대한 고객의 문의와 불만에 대응하느라 오히려 혼선이 일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출한도·대상 기준 없어 현장 우왕좌왕...부실만 떠안을 판

재원·리스크 금융사 몫인데

개인신용대출 상환유예 등

‘선발표 후협의’ 패턴 되풀이

채안펀드도 의견조율 안돼

제역할 못하고 불안만 가중



한 시중은행에서 여신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 A씨는 지난 8일 정부가 발표한 ‘취약 개인채무자 재기지원 강화 방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융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논의했다며 발표한 이 방안에는 은행부터 상호금융까지 모든 금융기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득이 감소한 개인채무자의 신용대출 원금 상환을 6~12개월간 미뤄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정부 발표로 공식화되기 전에 지원 주체인 은행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지만 A씨는 이날 정부 발표로 지원 내용을 처음 접했다. 금융당국이 실무자 회람만 거친 뒤 최종 방안이 확정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발표부터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를 서두르다 보니 정작 공표된 방안에는 지원 대상을 판별할 구체적인 요건도 명시되지 않았다. 수요자들로서는 자신이 지원 대상이 되는지 아닌지 가늠할 방법조차 없는 셈이다. A씨는 “금융기관조차 정부 발표를 보고 지원 내용을 알게 되는 경우가 왕왕 벌어지고 있다”며 “은행은 물론 마음이 급한 고객들도 혼란을 호소하지만 이미 실행 중인 지원 방안을 안내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정부와 청와대가 100조원이 넘는 대규모의 금융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지원에 필요한 자금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금융권과는 사전 협의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부터 하고 보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은행이 세부안을 확정하기 전에 8일 문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스타트업·벤처기업 대상 저금리 대출을 공표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검토하는 단계였던 해당 은행은 중기부의 발표가 나오자 서둘러 이번 주 내로 세부 내용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달 1일부터 은행권이 시행 중인 영세 소상공인 대상 초저금리 대출도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시행 초기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책정한 신용등급에 따라 1~3등급을 충족하는 소상공인에 대출을 내줬지만 ‘뺑뺑이 대출’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위는 외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의 신용등급으로 기준을 통일하라고 주문했다. 당초 사전협의 과정에서 금융위는 “은행마다 자체 신용평가 모델과 이를 기반으로 한 리스크 모형이 있다”며 은행의 독립적인 리스크 관리 방식을 존중했지만 여론에 떠밀려 방침을 바꿨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나이스신평 기준 개인 신용등급 1~3등급 비중은 경제활동인구의 88%에 이른다. 거래 이력을 포함해 정성적인 평가까지 반영하는 시중은행의 신용평가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은행으로서는 리스크 관리가 철칙이지만 지금은 그런 원칙조차 언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자금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도 당국·운용사와 업계 간 온도 차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초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로 지목됐던 여전채를 가장 먼저 매입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펀드가 출범하자 시장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를 요구한 데 이어 여전사별 금융지원 실적에 따라 매입 대상과 조건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추가했다. 여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원의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소상공인 지원도 자금 조달과 리스크 관리가 돼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금융사가 어떻게든 실탄만 대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위기 국면에 신속한 지원을 펼쳐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서도 어려움은 있다. 금융 지원 규모와 대책은 당국조차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불어났다. 당초 금융당국이 계획한 금융 지원 규모는 27조원 수준이었지만 첫 비상경제회의 개최를 코앞에 두고 100조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기관과의 세밀한 협의를 선행하지 못한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는 이전 정부 식의 ‘금융 관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한 만큼 금융사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빈난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