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한 아르헨티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국제 채권단에 3년간 채무상환 유예 및 원리금 삭감 등의 채무 재조정 방안을 제시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렸다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는 국가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채무 재조정 협상이 불발될 경우 신흥국 연쇄 디폴트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700억달러(약 85조8,000억원) 규모의 채무 재조정과 관련해 △2023년까지 채무상환 3년 유예 △이자의 62% 삭감 △ 원금 5.4% 삭감 등을 골자로 한 조정안을 내놓았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우린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라고 표현했다.
정부는 17일 채권단에 공식 채무 재조정안을 발송하고 앞으로 20일 동안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르헨티나는 당장 오는 22일 5억150만달러의 채권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30일간의 상환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에 채무 재조정 협상이 마감되기 때문에 협상이 불발될 경우 디폴트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아르헨티나 역사상 아홉 번째 디폴트가 된다.
아르헨티나는 올해로 3년 연속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이 50% 급등하고 국내총생산(GDP)의 90%에 해당하는 3,000억달러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는 등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좌파 정권인 페르난데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빌린 440억달러를 포함한 약 700억달러에 대해 채무 재조정을 추진해왔다.
특히 코로나19로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아르헨티나 국채 가격은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발행한 100년 만기 국채 가격은 지난달 초 이후 35% 이상 폭락, 달러당 26센트까지 떨어졌다. 100년 만기 국채 가격의 폭락은 투자자들이 국가의 영속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뜻으로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내놓은 정부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에스모애셋매니지먼트의 패트릭 에스테루엘라스 리서치헤드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그 누구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아르헨티나 정부의) 제안은 ‘싫으면 말고(take it or leave it)’ 식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날 나온 조정안은 좌파 정부의 지지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라며 조정안에서 채권 가치 산정에 민감한 ‘만기 연장’은 언급돼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향후 20일 동안 채권단과 만기 연장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으며 성공할 경우 디폴트를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IMF는 이날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 경제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며 ‘잃어버린 10년’을 기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IMF는 전날 내놓은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중남미 지역의 경제성장률을 -5.2%로 제시했다. 이는 IMF가 중남미 지역 경제 통계를 집계한 후 최악의 경기 침체다. IMF는 특히 브라질의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이 지난해의 89.5%에서 올해는 98.2%로 높아져 10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