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부터 잇딴 군사 현장 지휘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돌연 ‘신변 이상설’에 휩싸였다. 지난 14일 순항미사일 발사 지휘 현장과 15일 할아버지 김일성 전 주석 생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현장에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몸살설, 미사일 발사 현장 사고설부터 생명 위독설, 단순 방역설까지 온갖 추정이 난무하고 있다. CNN 등 일부 주요 외신들도 김정은이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날’ 행사에 불참한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순항미사일 발사 뒤 갑자기 사라진 김정은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6일 노동당·정부·무력기관 간부들이 전날인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4월15일 북한 최대 명절인 김일성의 생일이다. 김정은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김일성 생일에 한 번도 빠짐 없이 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문제는 공개된 사진에 김정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불거졌다. 통신이 공개한 사진에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와 정치국 위원·후보위원 등 핵심 간부 수십 명만 자리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대형 동상 앞에 놓인 꽃바구니들에만 김정은 명의가 적혀 있었다.
북한 매체에서 김정은의 사진이 사라진 건 그 전날부터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15일에도 전날 발사한 순항미사일 발사 사실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2017년 6월8일 지대함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 때와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당시 북한매체들은 다음 날 보도를 통해 순항미사일 발사가 김정은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16일 기자단과 만나 “만약 김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지 않았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지어 분석할 수 있는데 방역 조치가 시행 중이던 지난 2월 김정일 위원장 생일에는 참배를 했다”며 “광명성절, 태양절 통틀어 참배를 안 한 것 이번이 처음인데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통일부의 설명대로 김정은 지난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에도 해당 장소를 찾은 바 있다.
‘불경스러운’ 김일성 생일 불참... 몸살설부터 생명위독설까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김정은이 그냥 지나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로 분석했다. 단순히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 17일 “북한과 같은 군주제적 스탈린주의 체제 국가에서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이 ‘백두혈동’임을 과시하기 위해 그들의 생일 때마다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빠짐 없이 참배해 왔다”며 “그런데 고위간부들만 참배하고 김정은은 참배하지 않는 ‘불경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점을 볼 때 김정은의 건강이나 신변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14일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지만 노동신문은 관련 사진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는데 당일 사고가 발생했거나 최근 무리한 공개 활동으로 몸살 등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김정은이 최근 잇따라 군사 현장 지휘를 한 데다 지난 11일에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만큼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했다. 군사 관련 공개활동 때마다 김정은을 자주 수행하는 리병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에 참배한 점을 감안하면 미사일 시험 발사 당시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큰 사고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는 소문도 돌았다. 김정은이 무슨 일인지 수술을 잘못 받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북한 정계 내부 알력 다툼이 극심한 상황에서 ‘백두혈통’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 명목상 지도자로 표면에 나올 것이라는 구체적인 풍문까지 퍼졌다. 김여정이 지난달 3일 전례 없이 자기 명의로 청와대를 비난하는 담화를 낸 데 이어 이달 11일에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복귀하자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과 연관지어 해석한 풍문이었다.
2014년에도 장기간 잠수... ‘단순 방역 차단’ 분석도
다만 그가 불과 며칠 전까지 군사 훈련 현장을 직접 지휘하며 건재를 과시한 만큼 단순히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행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실내 행사를 일부러 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가방역비상체계를 가동 중인 북한은 태양절에도 대규모 열병식이나 집단 공연 같은 행사를 열었다는 보도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정 센터장은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한 지도부가 체제유지에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에서 김 위원장 금수산궁전 참배 보도가 없는 것으로 알고는 있는데 그 의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예단해 언급하는 것이 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김정은이 북한 매체에서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4년에도 9월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관람 이후 모습을 감춘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 다음으로 중요한 10월10일의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집권 이후 처음으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았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왼쪽 발목 낭종 제거를 위해 해외 전문의를 초청해 시술을 받았다고 10월 말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바 있다.
文정부는 총선 압승 직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시동
한편 정부는 지난 15일 총선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례 없는 압승으로 끝나자 곧바로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대통령 직속 통일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20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국화실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반도 전문가 특별대담을 개최한다.
이번 대담에는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대담자로 참여한다. 이들은 최근 한반도 상황을 진단하고 지체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대담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논의가 더 뒤로 밀린 데 따른 해법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국민 통합·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대해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한 자리다.
통일부 역시 ‘총선이 끝난 만큼 북한 개별관광을 적극 추진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부는 우리 국민의 북한 방문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남북 간 민간교류의 기회가 확대돼 나가길 기대하며 개별관광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코로나19 관련 동향 등은 아직까지 좀 보고 있다”며 신중히 검토할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