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5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사석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한 원로급 명예교수는 대뜸 이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하반기 새 수장을 맞아 안착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유임돼 재신임을 얻은 상태다. 정부가 편성한 올해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4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정책 리더십과 예산 문제를 우려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이유를 되물었다. 이에 그는 “우선 대통령을 보좌할 과학기술보좌관이 수개월째 공석이지 않느냐”며 “감염병 대응 관련 R&D나 4차 산업혁명 이슈에 대해 대통령을 근접보좌할 참모직이 비워져 있다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기정통부·산업부 장관은 나름대로 부처 업무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관 부처의 통상적인 업무 수준을 넘어 급변하는 기술과 산업의 지형을 선제적으로 준비할 큰 그림을 제시하고 차근차근 집행해야 할 때”라며 “그런 점에서 두 부처 장관이 긴밀하게 협의하고 함께 큰 그림을 대통령을 설득해 국가 어젠다로 이끌어가는 협업과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렇다면 예산문제는 어떨까. 해당 명예교수는 “정부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가용 예산을 긴급재난지원과 경기대응 정책에 우선적으로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미 편성된 R&D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고 코로나 대응이나 단기 경기부양자금 집행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과학기술 분야 기관에서는 이미 “정부로부터 올해 받기로 한 예산이 절반 밖에 오지 않지 않았다”는 등의 우려 섞인 전언이 과학계 고위관계자 등을 통해 필자의 귀에 들어오기도 했다.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로 세수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과학기술계 및 산업계 투자에 대한 예산집행 차질은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올 전 세계적 경제위기를 감안한다면 ‘세수 보릿고개’가 향후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 와중에서도 현 정부의 정치코드로 볼 때 복지에 대한 예산 확대 기조는 지속하려고 할 것이니 상대적으로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산업 및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이 향후 예산편성 순위에서 밀릴 우려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청와대 참모와 소관 부처 장관들이 깊게 고민하고 협업해 선제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총선에서 패배한 야권이 새 국회에서 선명성 부각을 위해 대립각을 한층 강하게 세울 것으로 보이므로 과학기술 및 산업 분야 규제 해소 법안의 표류 장기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newsroom@sedaily.com